출생 생년 불명
사망 245년 — 정사에 연도 없음. 육손이 죽은 해(245)의 이궁 사건에 연루되어 옥사한 것으로 둔 자리값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22~244년 | 오 | 참군교위 | 불명 |
| 245년 | 오 | 태자태부 | 불명 |
황무 원년 여범·하제와 수군으로 동구에서 조휴를 막다 폭풍이 일자 물에 떠 있던 병사들을 배에 올려 백여 명을 구한다.
정사 오찬전: 황무 원년 여범·하제와 함께 수군으로 동구에서 조휴를 막았는데 큰바람에 배가 끊어져 떠내려갔다. 배가 기울까 두려워 동료 관리들이 창으로 물속 사람을 찔러 막을 때 오찬은 황연과 함께 사람들을 받아들였고 "배가 가라앉으면 함께 죽을 뿐이니 사람이 궁한데 어찌 버리느냐"고 했다. 이때 구한 사람이 백여 명이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粲、淵所活者百餘人」
이궁의 다툼에서 적서의 분별을 주장하고 노왕 손패를 하구로 내보내려다 손패·양죽 일당의 모함으로 옥에서 죽는다.
정사 오찬전: 태자태부로서 이궁 사건에 올곧은 말로 적서의 분별을 밝혔고 노왕 손패를 하구에 나가 있게 하고 양죽을 도읍에 두지 말자고 했다. 육손에게 소식을 알려 육손이 무창에서 거듭 표를 올려 간했고 이 때문에 손패·양죽의 참소로 하옥되어 죽었다. 연도는 육손전의 이궁 사건 해(245)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下獄誅」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지력 | 55 | 이궁의 다툼에서 적서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노왕 손패를 하구로 내보내자고 주장했다(오찬전). |
| 정치 | 70 | 회계태수로 사람을 모아 소의중랑장이 되어 여대와 함께 산월을 평정했다(오찬전). |
| 매력 | 71 | 동구에서 폭풍으로 표류한 배의 사람들을 「배가 가라앉으면 함께 죽겠다」며 백여 명 구했다(오찬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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