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徐盛)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오출생 생년 불명사망 225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사망 225년 — 황무 중 졸(222~229, 정사에 연도 없음). 225는 기록상 마지막 연도(건업 위성)를 채운 자리값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0년시상시상장추정
217년유수구중랑장추정
222년이릉건무장군·여강태수기록
225년건업안동장군·무호후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0년오시상장추정
201~216년오시상장불명
217년오중랑장추정
218~221년오중랑장불명
222년오건무장군·여강태수기록
223~224년오건무장군·여강태수불명
225년오안동장군·무호후기록

나온 사건·전투

200년 · 시상장

시상장으로 황조의 아들 황사가 수천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200명도 안 되는 군사로 막아 깬다.

정사 서성전: 손권이 통사를 맡자 별부사마가 되어 시상장으로 황조를 막았다. 황조의 아들 사가 수천으로 쳐내려오자 서성은 아전·병사 200명이 안 되었는데도 맞서 천여 명을 상하게 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손권의 통사 직후(200년대)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5 「傷射吏士千餘人」

217년 · 중랑장

조조가 유수로 나오자 위군이 횡강에 대거 이르렀을 때 풍랑 속에서 적진에 돌격해 적을 물리친다.

정사 서성전: 위군이 횡강에 크게 나오자 서성이 장수들과 달려갔고, 몽충을 타다 바람을 만나 배가 적 언덕 아래 떨어졌을 때 홀로 군사를 이끌어 적을 돌격해 물리쳤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조조의 유수 출정에 맞춰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5 「盛獨將兵,上突斫敵」

221년 · 중랑장

손권이 위의 책봉(오왕)을 받을 때 사신 형정의 교만에 분개해 눈물을 흘린다.

정사 서성전: 손권이 위에 번을 칭하자 위 사신 형정이 손권을 오왕에 임명했는데, 형정에게 교만한 기색이 있어 장소가 노하고 서성도 분개해 "우리 임금이 형정과 맹약하니 욕되지 않은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형정이 이를 듣고 강동 장상은 오래 남의 아래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5 「因涕泣橫流」

222년 · 건무장군·여강태수

유비가 서릉에 주둔하자 여러 둔을 쳐 취한다.

정사 서성전: 유비가 서릉에 주둔하자 서성이 여러 둔을 공격해 취해 공이 있었다. 이후 건무장군, 도정후로 승진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5 「劉備次西陵,盛攻取諸屯」

225년 · 안동장군·무호후

위 문제의 강 건너려는 움직임에 건업에서 위성을 쌓고 거짓 누각과 배를 띄워 위군을 물러나게 한다.

정사 서성전: 위 문제가 크게 나와 도강하려 하자 서성이 건업에서부터 위성을 쌓고 위에 거짓 누각을 세우고 강에 배를 띄우자고 계책을 냈다. 장수들이 무익하다 했으나 고집해 세웠고 문제가 광릉에서 보고 놀라 물러났다. 연도는 위 문제의 광릉 출정(225)에 맞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5 「盛建計從建業築圍」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76위 문제가 광릉에 이르자 건업에 위성을 쌓아 위군이 물러갔다(서성전).
무력75시상장으로 있을 때 황조의 아들 황사 수천을 200명도 안 되는 군사로 막아 깼다(서성전).
지력73장수들이 무익하다 했지만 위성을 고집해 세워 위 문제를 물러나게 했다(서성전).
정치57서성전에 정무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
매력64위 사신 형정 앞에서 나라의 치욕에 눈물을 흘려 위 쪽에서 강동 장상을 두려워했다(서성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서성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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