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식(盧植)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후한 조정출생 생년 불명사망 192년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192년 — 초평 3년(192) 병사. 관 없이 홑 천으로 땅에 묻으라 유언(후한서 노식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84년광종북중랑장(광종 포위)기록
185년낙양상서(연대 일부 추정)추정
186년낙양상서(연대 일부 추정)추정
187년낙양상서(연대 일부 추정)추정
188년낙양상서(연대 일부 추정)추정
189년낙양상서 → 낙양에서 동탁에 반대 후 파면기록
190년상곡(상곡에 은거)추정
191년상곡(상곡에 은거)추정
192년상곡(원소의 군사 초빙을 받고 사망)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년후한 조정북중랑장(광종 포위)기록
185~188년후한 조정상서(연대 일부 추정)추정
189년후한 조정상서 → 낙양에서 동탁에 반대 후 파면기록
190~191년기타·재야(상곡에 은거)추정
192년원소·원씨(원소의 군사 초빙을 받고 사망)기록

나온 사건·전투

184년 · 북중랑장(광종 포위) · 강등

북중랑장으로 광종을 포위하고 운제를 만들어 곧 함락시킬 형세였으나 소황문 좌풍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모함당하고 함거로 압송된다.

정사 후한서 노식전: 중평 원년 황건이 일어나자 사부가 노식을 천거해 북중랑장에 임명했다. 장각 등이 광종에서 버티자 노식은 진을 치고 운제를 만들어 거의 함락시킬 형세였다. 천자가 보낸 소황문 좌풍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좌풍이 '광종 적은 쉽게 깨뜨릴 수 있는데 노중랑이 보루를 닫고 하늘의 벌을 기다리고 있다'고 모함했다. 황제가 노해 함거로 압송하고 죽음을 한 등급 감했다.

연의: 연의 1~2회 — 연의 1~2회가 노식의 광종 포위와 좌풍의 모함, 장비의 분노를 극화한다.

관련: 광종 전투

출전: 後漢書 卷64 「拜北中郎將,持節,以護烏桓中郎將宗員副,將北軍五校士」 / 後漢書 卷64 「帝怒,遂檻車征植,減死罪一等」

189년 · 상서 → 낙양에서 동탁에 반대 후 파면 · 강등

동탁의 폐립 논의에서 모든 신하가 입을 다물 때 홀로 반대해 파면된다. 이후 노병을 핑계로 귀향을 청해 환원 길로 몰래 빠져나간다.

정사 후한서 노식전: 동탁이 조당에서 대신들을 모아 폐립을 논했을 때 노식만이 홀로 이의를 제기했다. 동탁은 노해 회의를 마치고 노식을 죽이려 했으나, 채옹의 청과 팽백의 간언으로 면직에 그쳤다. 노식은 노병을 이유로 귀향을 청하고 환원 길로 몰래 빠져나갔으며 동탁이 사람을 보내 쫓았으나 회(懷)에서 미치지 못했다.

연의: 연의 3회 — 연의 3회가 온명원 폐립 논의에서 노식의 반대를 극화한다.

출전: 後漢書 卷64 「腢僚無敢言,植獨抗議不同」 / 後漢書 卷64 「卓果使人追之,到懷,不及」

190년 · (상곡에 은거)

상곡에 숨어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다가 원소가 군사로 초빙한다.

정사 후한서 노식전: 노식은 상곡에 숨어 사람들과 사귀지 않았다. 기주목 원소가 군사로 초빙했다. 연도는 정사에 없어 서술 순서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後漢書 卷64 「遂隱於上谷,不交人事。冀州牧袁紹請為軍師」

192년 · (원소의 군사 초빙을 받고 사망)

초평 3년 병으로 죽는다. 홑 천으로만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정사 후한서 노식전: 초평 3년 죽었다. 위독할 때 아들 노검에게 관 없이 토혈에 묻고 몸에 홑 천만 두르라 당부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後漢書 卷64 「初平三年卒」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71북중랑장으로 북군 오영과 천하 군병을 거느리고 광종을 에워싸고 운제를 만들어 곧 함락시킬 형세였다(후한서 노식전).
무력62신장이 8척 2촌이고 목소리가 종소리 같았으며 술을 한 섬 마셨다는 서술이 있다. 직접 싸우는 서술은 적다(후한서 노식전).
지력86마융에게서 고금학을 익혀 장구에 매이지 않았고 '상서장구', '삼례해고'를 썼다. 동탁의 폐립 논의 때 홀로 반대했다(후한서 노식전).
정치83구강·여강태수로 만족(蠻)을 복종시켰다. 광화 원년 팔사(八事)를 상소했다(후한서 노식전).
매력81조조가 '학문은 유자의 종주, 선비의 모범'이라 칭송하며 무덤을 정비하게 했고, 환관에게 뇌물을 보내지 않아 파면된 일화가 있다(후한서 노식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노식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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