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35년경(추정) — 생년 불명(13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189년 — 중평 6년·광희 원년(189) 8월 경오일 소제를 끼고 소평진으로 달아났다가 민공의 질책에 투하해 사망(자치통감 권59)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84년 | 낙양 | 중상시(십상시) | 기록 |
| 185년 | 낙양 | 중상시(십상시) | 기록 |
| 186년 | 낙양 | 중상시(십상시) | 기록 |
| 187년 | 낙양 | 중상시(십상시) | 기록 |
| 188년 | 낙양 | 중상시(십상시) | 기록 |
| 189년 | 낙양 | 중상시 — 하진 살해 뒤 소제 호송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8년 | 후한 조정 | 중상시(십상시) | 기록 |
| 189년 | 후한 조정 | 중상시 — 하진 살해 뒤 소제 호송 | 기록 |
황건 토벌 중 예주자사 왕윤이 황건적 속에서 중상시 장양의 빈객이 쓴 서신(황건과의 교통)을 찾아 상주하자 영제가 장양을 꾸짖었으나 장양이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끝내 벌하지 못한다. 장양은 이후 왕윤에게 원한을 품는다. 중평 원년.
정사 후한서 왕윤전: 중평 원년 황건적이 일어나 왕윤이 예주자사로 특선되어 황건 별수를 대파했다. 적 속에서 중상시 장양의 빈객이 황건과 교통한 서신을 얻어 왕윤이 그 간사함을 상세히 아뢰자, 영제가 장양을 꾸짖으며 노했고 장양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해 끝내 죄주지 못했다. 장양은 원한을 품고 일로 왕윤을 모함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後漢書 卷66 본 「於賊中得中常侍張讓賓客書疏與黃巾交通允具發其奸以狀聞靈帝責怒讓讓叩頭陳謝竟不能罪之」
하진이 모든 상시의 주살을 청하러 장락궁에 들어오자 장양·단규가 '대장군이 상중에 칭병하며 오지 않다가 갑자기 들어온 속뜻이 무엇이냐'며 엿들어 알고, 무리 수십 인을 이끌고 숨어 있다 하진을 태후 조서로 속여 불러 상방감 거목이 가덕전 앞에서 하진을 벤다.
정사 자치통감 권59: 8월 무진 하진이 장락궁에 들어가 태후에게 모든 상시를 주살하자고 청했다. 중상시 장양·단규가 '대장군이 칭병하며 상례에 오지 않고 장례에도 가지 않다가 오늘 갑자기 입성하니 무슨 뜻이냐'라며 몰래 엿들어 그 말을 모두 들었다. 무리 수십 인을 이끌고 병기를 들고 곁문으로 몰래 들어가 성문 아래 숨었다가 거짓으로 태후의 조서로 하진을 불러 앉혔다. 장양 등이 하진을 꾸짖은 뒤 상방감 거목이 칼을 뽑아 가덕전 앞에서 하진을 베었다.
연의: 연의 3회
출전: 資治通鑑 卷059 본 「於是尚方監渠穆拔劍斬進於嘉德殿前」
원소 등이 궁에 난입해 환관 2천여 명을 죽이자 장양·단규는 소제·진류왕을 끼고 곡문으로 걸어 나가 소평진에 이르렀다가, 민공의 꾸짖음에 두려워 절하고 소제에게 '신들이 죽으니 폐하는 스스로 아끼소서'라 말한 뒤 강물에 뛰어들어 죽는다. 경오일.
정사 자치통감 권59: 경오 장양·단규 등이 궁박해져 소제와 진류왕 수십 인을 이끌고 곡문으로 걸어 나와 밤에 소평진에 이르렀다. 옥새도 지니지 못했고 공경도 따르지 못했다. 상서 노식과 하남 중부연 민공이 밤에 황하 가에 이르렀고 민공이 장양 등을 큰소리로 꾸짖으며 '지금 빨리 죽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죽이겠다'고 하며 몇 명을 손수 칼로 베었다. 장양 등이 두려워 손을 모아 거듭 절하고 제에게 '신 등은 죽으니 폐하는 스스로 아끼소서'라 하고 강물에 투신해 죽었다.
연의: 연의 3회
출전: 資治通鑑 卷059 본 「讓等惶怖叉手再拜叩頭向帝辭曰臣等死陛下自愛遂投河而死」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군 지휘 기록 없음. 군은 환관이 맡을 수 없어 외부 병력(하진·동탁·원소)과 충돌했다.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 없음. |
| 지력 | 61 | 하진을 입궁시켜 치려는 계획을 사전에 엿듣고 선수를 쳤다(자치통감 권59). |
| 정치 | 39 | 중상시로서 황건과 결탁한 서신이 드러났으나 영제가 끝내 벌하지 못했다(후한서 왕윤전). 경기 일대 옥토가 장양 등의 소유라는 동탁 상소가 있다(배송지 주 전략). |
| 매력 | 50 | 민공의 질책에 손을 모아 절하며 '신들이 죽으니 폐하께서 스스로 아끼소서'라 하고 투하했다(자치통감 권59).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양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