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양(張楊)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후한 조정출생 생년 불명사망 198년기록 연도 6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198년 — 건안 3년(198) 부하 양추에게 피살(장양전: 其將楊醜,殺楊以應太祖).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89년호관상당 점거기록
190년야왕건의장군·하내태수기록
191년야왕건의장군·하내태수기록
192년야왕건의장군·하내태수기록
193년야왕하내태수추정
194년야왕하내태수추정
195년야왕하내태수추정
196년낙양 · 다른 후보: 야왕안국장군 → 대사마기록
197년야왕대사마·하내추정
198년야왕대사마(부하에게 피살)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88년기타·재야병주 무맹종사·가사마(정원 휘하, 연대 불명)불명
189년기타·재야상당 점거기록
190~192년기타·재야건의장군·하내태수기록
193~195년기타·재야하내태수추정
196년후한 조정안국장군 → 대사마기록
197년기타·재야대사마·하내추정
198년기타·재야대사마(부하에게 피살)기록

나온 사건·전투

189년 · 상당 점거

하진이 죽고 동탁이 낙양에 들어오자 상당에서 호관을 치고 현들을 노략하며 수천의 무리를 얻는다.

정사 장양전: 하진이 모병하라고 병주로 돌려보냈는데 하진이 패하고 동탁이 난을 일으키자, 장양은 거느린 병사로 상당태수를 호관에서 치고 여러 현을 약탈해 수천 명이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楊遂以所將攻上黨太守於壺關,不下,略諸縣,眾至數千人」

191년 · 건의장군·하내태수

원소와 합류해 흉노 선우 어부라와 장수(漳水)에 주둔한다. 선우가 배반하자 장양을 데리고 떠난다.

정사 장양전: 원소가 하내에 오자 장양이 합류해 흉노 선우 어부라와 장수에 주둔했다. 선우가 배반하려 하나 원소·장양이 따르지 않자 장양을 붙잡아 떠났고, 원소는 국의를 보내 업 남쪽에서 쳐부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復與匈奴單于於夫羅屯漳水」 / 三國志 卷08 「單于執楊與俱去」

196년 · 안국장군 → 대사마 · 승진

헌제가 낙양으로 돌아오자 식량을 가지고 마중하고, 대사마에 제수되어 야왕으로 돌아간다.

정사 장양전: 건안 원년 양봉·동승·한섬이 황제를 끼고 낙양으로 돌아왔으나 식량이 없었다. 장양은 식량으로 길에서 맞이해 낙양에 이르고 '천자는 천하와 함께하는 분이니 나는 외난을 막겠다' 하고 야왕으로 돌아갔다. 곧 대사마에 제수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楊以糧迎道路,遂至洛陽」 / 三國志 卷08 「即拜為大司馬」

198년 · 대사마(부하에게 피살) · 대패

조조가 여포를 포위했을 때 구원하지 못하고 동시(東市)로 군을 내어 시늉만 하다 부하 양추에게 죽는다.

정사 장양전: 장양은 평소 여포와 친해 조조가 여포를 에워쌌을 때 구하려 했으나 못했고, 동시로 병을 내어 멀리서 형세만 보였다. 부하 양추가 장양을 죽이고 조조에 호응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太祖之圍布,楊欲救之,不能」 / 三國志 卷08 「其將楊醜,殺楊以應太祖」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1상당에서 수천 명을 모았고 하내태수·대사마로 하내를 거점 삼았다. 천자를 낙양까지 식량으로 맞았다(장양전).
무력69무용으로 병주에서 무맹종사에 올랐다(以武勇給并州,爲武猛從事)(장양전).
지력56천자를 낙양에 모시되 '천자는 천하가 함께하는 분'이라며 자신은 외난을 막겠다고 물러난 판단이 있다(장양전).
정치60야왕에 머물며 하내를 다스렸고 양식으로 천자를 맞은 일이 대사마 임명으로 이어졌다(장양전).
매력61여포와 친해 조조가 여포를 에워쌌을 때 구하려 했으나 부하 양추에게 죽었다(장양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양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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