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12년 — 정사 본문에 몰년이 없다. 마초가 반란(211)한 뒤 연루된 것으로 보는 통설 값(212)을 둔 자리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3년 | 장안 | 정서장군 | 기록 |
| 208년 | 허창 | 위위 | 추정 |
| 212년 | 허창 | 위위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1년 | 기타·재야 | (서주 반군) | 불명 |
| 192년 | 기타·재야 | 정서장군 | 불명 |
| 193년 | 기타·재야 | 정서장군 | 기록 |
| 194~207년 | 기타·재야 | 정서장군 | 불명 |
| 208년 | 후한 조정 | 위위 | 추정 |
| 209~211년 | 후한 조정 | 위위 | 불명 |
| 212년 | 후한 조정 | 위위 | 추정 |
영제 말 변장·한수 등과 함께 서주에서 일으킨다.
정사 마초전: 아버지 마등은 영제 말 변장·한수 등과 함께 서주에서 일으켰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6 「父騰,靈帝末與邊章、韓遂等俱起事於西州」
한수와 장안에 와 투항해 정서장군이 되어 미에 주둔한다.
정사 마초전: 초평 3년 한수·마등이 무리를 이끌고 장안에 갔고 한이 한수를 진서장군, 마등을 정서장군으로 삼아 미에 주둔하게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6 「騰為征西將軍,遣屯郿」
시중 마우 등과 장안을 칠 계획으로 장평관까지 왔으나 일이 새어 번조에게 패해 양주로 돌아간다.
정사 마초전: 뒤에 마등이 장안을 습격했다가 패해 달아나 양주로 돌아갔다. 동탁전: 마우 등이 마등을 안에서 호응하게 해 이각을 죽이려 했으나 계획이 새고 번조가 마등을 쳐 패주시켰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6 「後騰襲長安,敗走,退還涼州」
사예교위 종요가 화복을 일러 주자 아들 마초를 보내 평양에서 곽원·고간을 쳐 부하 방덕이 곽원의 목을 벤다.
정사 마초전: 종요가 한수·마등에게 편지로 이해를 말하자 마등이 마초를 종요와 평양에서 곽원·고간을 치게 했고 마초의 부하 방덕이 곽원의 목을 베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6 「騰遣超隨繇討郭援、高幹於平陽」
한수와 틈이 벌어져 경기로 돌아가기를 청해 위위가 되고 마초가 부곡을 이끈다.
정사 마초전: 마등이 한수와 불화해 경기로 돌아가기를 청하자 위위로 불렀고 마초를 편장군·도정후로 삼아 마등의 부곡을 거느리게 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6 「於是徵為衛尉,以超為偏將軍」
마초가 한수 등과 반란한 뒤 연루되어 죽는다는 통설이 있으나 정사 이 권의 본문에는 졸년이 없다.
정사 마초전은 마등이 위위가 되고 마초가 반란해 동관에서 조조와 대치한 사실만 적고 마등의 죽음은 적지 않는다. 212는 통설 값이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6 「超既統眾,遂與韓遂合從」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74 | 변장·한수와 함께 서주에서 일어났다(마초전). |
| 지력 | 54 | 종요의 설득을 받아 아들 마초를 평양으로 보내 곽원·고간을 쳐 부하 방덕이 곽원의 목을 베게 했다(마초전).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매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마등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