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통(駱統)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오출생 192년사망 227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192년 — 황무 7년(227) 졸 향년 36세로 역산

사망 227년 — 황무 7년 졸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22년이릉편장군기록
227년유수구유수독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92~211년기타·재야(회계 오상 출신, 어머니가 화흠의 소실이 되어 친척들과 회계로 돌아옴)불명
212~221년오오정상불명
222년오편장군기록
223~226년오편장군불명
227년오유수독기록

나온 사건·전투

212년 · 오정상

20세에 오정상으로 시험 임용되어 호구 만 호가 넘는 고을을 은혜롭게 다스려 감탄을 산다.

정사 낙통전: 손권이 장군으로 회계태수를 겸할 때 낙통이 20세에 오정상에 시험 임용되었는데, 호구가 만을 넘었으나 은혜로 다스려 모두 감탄했다. 손권이 기려 공조로 부르고 기도위 대행, 종형 손보의 딸을 아내로 주었다. 연도는 출생 역산(192+20)에 맞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統年二十,試為烏程相」

222년 · 편장군

육손을 따라 의도에서 촉군을 깨고 이어 조인이 유수를 칠 때 엄규와 함께 중주 습격을 막는다.

정사 낙통전: 육손을 따라 의도에서 촉군을 깬 공으로 편장군이 되었다. 황무 초 조인이 유수를 공격하며 상조 등을 보내 중주를 기습하게 하자 낙통이 엄규와 함께 막아 깨뜨리고 신양정후, 뒤에 유수독이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以隨陸遜破蜀軍於宜都」

227년 · 유수독

황무 7년 36세로 죽는다. 생전에 여러 번 올린 상소 중 모집병을 민간에 두면 풍속이 나빠진다는 주장을 손권이 끝내 시행했다.

정사 낙통전: 수십 번 상소했고 모든 말이 옳았다. 특히 점모(占募, 징모 방식)가 민간에서 풍속을 해치고 이반심을 낳으니 폐지해야 한다고 했고 손권이 거듭 따지다 끝내 시행했다. 36세, 황무 7년 졸.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年三十六」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무력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지력70징역 과다·질병으로 호구가 줄었다며 「백성을 먼저 길러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고 손권이 깊이 마음에 두었다(낙통전).
정치8320세에 오정상으로 호구 만 호를 넘기도록 은혜롭게 다스려 사람들이 탄복했다(낙통전).
매력81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음식과 양을 줄였고 누나가 사비로 곡식을 대 주었다(낙통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낙통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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