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83년 — 적오 8년(245) 졸 향년 63세로 역산(세는 방식에 따라 1년 차이)
사망 245년 — 적오 8년, 태자 문제로 손권의 문책이 이어지자 분하고 노여워하다 죽음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22년 | 이릉 | 대도독·보국장군 | 기록 |
| 229년 | 무창 | 상대장군·우도호 | 기록 |
| 244년 | 무창 | 승상 | 기록 |
| 245년 | 무창 | 승상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202년 | 기타·재야 | (오군 오 출신, 종조부 육강을 따라 지냄) | 불명 |
| 203~209년 | 오 | 막부 영사 | 불명 |
| 210~218년 | 오 | 정위교위·장하우부독 | 불명 |
| 219~221년 | 오 | 편장군·우부독 | 불명 |
| 222년 | 오 | 대도독·보국장군 | 기록 |
| 223~227년 | 오 | 보국장군·형주목 | 불명 |
| 228년 | 오 | 대도독 | 불명 |
| 229년 | 오 | 상대장군·우도호 | 기록 |
| 230~243년 | 오 | 상대장군·우도호 | 불명 |
| 244~245년 | 오 | 승상 | 기록 |
21세에 막부에 출사하고 해창 둔전도위로 나가 흉년에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한다.
정사 육손전: 손권이 장군이 되었을 때 21세로 막부에 들어가 동서조영사를 거쳤고, 해창 둔전도위로 나가 현을 겸했다. 해마다 가뭄이 들자 창고의 곡식을 풀어 빈민을 구휼하고 농상을 권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8 「遜開倉谷以振貧民」
회계 산적 대장 반림, 파양 적수 우돌을 토벌하고 단양 비잔의 반란을 북 소리 위장으로 깨뜨린다.
정사 육손전: 손권의 장하우부독이 되어 단양 적수 비잔(費棧)이 조조의 인수를 받아 산월을 선동하자 손권이 육손을 보냈고, 육손이 깃발과 북을 분산 배치해 밤에 산골짜기에서 북을 치며 나아가 깨뜨렸다. 이후 동 3군을 정비해 정병 수만을 얻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8 「遜乃益施牙幢,分佈鼓角」
병든 여몽의 후임으로 천거받아 육구에 이르러 관우에게 겸손한 편지를 보내 방비를 풀게 하고, 공안·남군을 취한 뒤 의도태수를 겸한다.
정사 육손전: 여몽이 건업에서 병을 앓을 때 육손이 관우의 교만을 이용할 계책을 내놓았고, 손권이 육손을 편장군·우부독으로 삼아 후임으로 세웠다. 육손은 육구에서 관우에게 겸손한 서신을 보내 관우의 경계를 풀었으며 손권이 몰래 군을 올려 육손과 여몽이 공안·남군을 함락했다. 육손은 의도태수·무변장군·화정후, 건안 24년 11월.
연의: 연의 97회 — 연의 97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58 「遜具啟形狀,陳其可禽之要」
황무 원년 유비가 이릉으로 5만에 육박하자 대도독이 되어 한동안 맞서지 않다가 풀 한 줌씩 들려 불로 영채를 격파한다.
정사 육손전: 황무 원년 유비가 대군으로 서쪽 경계에 오자 손권이 육손을 대도독·가절로 삼고 주연·반장·송겸·한당·서성·선우단·손환 등 5만을 거느려 막게 했다. 유비가 무협·건평에서 이릉 경계까지 수십 둔을 이었는데, 육손은 모든 장수가 먼저 치자 해도 참았고, 때가 되자 병사에게 각각 띠풀 한 줌을 쥐고 불로 한 영채를 먼저 깨라 한 뒤 모든 군이 동시에 공격해 장남·풍습·사마가 등을 베고 40여 영채를 깨뜨렸다. 유비는 마안산으로 올라갔다가 밤에 달아나 백제성으로 들어갔다.
연의: 연의 84회 — 연의 84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58 「乃敕各持一把茅,以火攻拔之」
백제성에 들어간 유비를 또 치자는 서성·반장 등의 청에 반대하고, 위가 노리는 틈을 경계해 철군한다.
정사 육손전: 유비가 백제에 머물자 서성·반장·송겸 등이 거듭 치기를 청했으나 육손은 주연·낙통과 함께 조비가 외견상 돕는 척하나 속셈이 있으므로 철수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얼마 안 가 위군이 과연 출병해 세 방면에서 적을 받았다. 이어 촉과 화친이 이루어져 손권이 육손에게 제갈량과의 서신을 맡기고 인장도 두었다. 연도는 황무 2년(223)으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8 「曹丕大合士眾」
황무 7년 주방의 거짓 항복으로 조휴가 환성으로 오자 대도독이 되어 중군을 맡고 주환·전종을 좌우익으로 두어 협석까지 추격한다.
정사 육손전: 손권이 주방에게 위 대사마 조휴를 속이게 했고 조휴가 환성에 들어오자 육손에게 황월을 주어 대도독으로 삼았다. 육손은 중부가 되어 주환·전종을 좌우익으로 삼아 조휴의 복병을 쳤고 협석까지 추격해 만여 명을 베고 마소와 수레 만 대와 군수품을 획득했다. 조휴는 돌아가 등창으로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8 「遜自為中部」
황룡 원년 손권이 건업으로 가며 태자를 무창에 두자 육손을 불러 태자를 보좌하고 형주·예장 3군의 군국을 감독하게 한다.
정사 육손전: 황룡 원년 상대장군·우도호가 되었다. 이해 손권이 건업으로 동순하면서 태자·황자와 상서 9관을 남기고 육손을 불러 태자를 보좌하며 형주와 예장 3군의 일을 맡게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8 「征遜輔太子」
가화 5년 제갈근과 양양을 공격하다 적에게 서신이 빼앗기자 일부러 콩을 심고 활쏘기를 하는 척하며 기만해 물러난다.
정사 육손전: 가화 5년 손권의 북정 때 육손이 제갈근과 양양을 공격했다. 한편(韓扁)의 서신이 빼앗기자 제갈근이 겁을 냈으나 육손은 콩을 심게 하고 장수들과 활쏘기를 하며 태연했고, 제갈근에게 배를 이끌고 나가게 하고 자신은 육상 병마로 양양성을 향해 적이 성으로 돌아가게 한 뒤 퇴각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8 「以向襄陽城」
적오 7년 고옹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된다.
정사 육손전: 적오 7년 고옹을 대신해 승상이 되었으며 주목·도호·무창 일을 그대로 맡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8 「代顧雍丞相」
태자와 노왕을 둘러싼 이궁 분쟁에서 외생질 고담·고승이 유배되고 태자태부 오찬이 하옥되는 등 문책이 이어지자 분노해 63세로 죽는다.
정사 육손전: 이궁의 다툼이 일 때 육손의 외생 고담·고승·요신이 태자를 따랐다 하여 유배되었고 태자태부 오찬은 육손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하여 하옥되어 죽었다. 손권이 거듭 사자를 보내 육손을 문책하자 분하고 노여워하다 63세로 졸했다. 집에는 남은 재산이 없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8 「遜憤恚致卒」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96 | 이릉(222)에서 유비의 40여 영채를 화공으로 깨고 퇴각로까지 끊어 대승했다(육손전). |
| 무력 | 62 | 직접 무예로 싸운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검을 짚고 장수들을 꾸짖은 일은 있음). |
| 지력 | 98 | 여몽이 병을 핑계로 건업에 가자 관우의 방심을 유도하는 계책을 더했고, 관우에게 겸손한 편지를 보내 방비를 풀게 했다(육손전). |
| 정치 | 88 | 산월을 평정해 정병 수만을 얻고 둔전·권농으로 백성을 다스렸으며 형벌을 가볍게 하자는 상소를 올렸다(육손전). |
| 매력 | 81 | 공족·구장들이 불복할 때 검을 짚고 군령을 말해 복종시켰고, 손권이 어인(印)을 맡겨 유선·제갈량과의 서신도 고치게 했다(육손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육손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