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魯肅)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오출생 172년사망 217년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172년 — 건안 22년(217) 졸 향년 46세로 역산

사망 217년 — 건안 22년 졸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0년오(오군)(손권을 처음 만남)추정
208년장판찬군교위기록
210년경구봉무교위기록
215년익양횡강장군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9년기타·재야(임회 동성 출신, 재산을 흩어 향리를 도움)불명
200년오(손권을 처음 만남)추정
201~207년오(손권을 처음 만남)불명
208년오찬군교위기록
209년오찬군교위불명
210년오봉무교위기록
211~214년오한창태수·편장군불명
215년오횡강장군기록
216~217년오횡강장군불명

나온 사건·전투

200년 · (손권을 처음 만남)

손권과 마주 앉아 강동에 솥발처럼 자리 잡는 계책을 말한다.

정사 노숙전: 손책 사후 주유의 천거로 손권을 만나 한실 부흥은 불가능하고 조조도 쉬이 없앨 수 없으니 강동에 정립해 천하의 틈을 보다 황조·유표를 쳐 장강 전역을 차지하자고 했다. 연도는 손책 사후(200)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惟有鼎足江東」

208년 · 찬군교위

유표 사후 문상을 자청해 장판에서 유비를 만나 손권과 힘을 합칠 것을 권한다.

정사 노숙전: 유표가 죽자 문상을 자청해 길을 갔고 남군에 이르렀을 때 유종이 항복해 유비가 달아나는 중이었다. 장판에서 유비와 만나 손권의 뜻을 전하고 협력을 권했다. 제갈량과 이 자리에서 교분을 맺었다.

연의: 연의 66회 — 연의 66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관련: 장판 전투와 조운의 아두 구출

출전: 三國志 卷54 「到當陽長阪」

208년 · 찬군교위

조조에 맞설 것인지 의논할 때 홀로 항복에 반대하고 주유를 불러들일 것을 권한다.

정사 노숙전: 조조가 동쪽으로 온다는 소식에 장수들이 모두 맞이하자고 할 때 노숙은 말없이 있다가 손권을 따라가 "다른 이들은 장군을 그르칠 뿐"이라며 주유를 소환하자고 권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장판 전투와 조운의 아두 구출

출전: 三國志 卷54 「專欲誤將軍」

210년 · 봉무교위

유비가 경구에서 손권을 만나 형주 도독을 청하자 홀로 형주를 빌려주자고 권한다.

정사 노숙전: 유비가 경(경구)에 가서 손권을 만나 형주 도독을 청할 때 노숙만이 빌려줄 것을 권했다. 조조는 이를 듣고 글을 쓰던 붓을 떨어뜨렸다. 이후 주유가 죽자 노숙이 병력 4천여 명을 이어받아 봉무교위가 되었다. 연도는 건안 15년(210) 유비의 경구 방문에 맞춘 값.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惟肅勸權借之」

211년 · 한창태수·편장군

처음 강릉에 있다가 육구로 내려가 주둔한다.

정사 노숙전: 처음에 강릉에 있다가 뒤에 육구로 내려가 주둔해 위엄과 은혜가 크게 행해졌고 무리는 만여 명으로 늘었다. 한창태수·편장군. 연도는 본문에 없음.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後下屯陸口」

215년 · 횡강장군

익양에서 관우와 군을 맞대고, 단도로 만나 담판해 상수를 경계로 삼는다.

정사 노숙전: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뒤 손권이 장사·영·계를 요구하자 유비가 불응해 여몽이 취하러 가고 관우가 세 군을 다투었다. 노숙은 익양에서 관우와 맞서 100보 거리에서 단도만 들고 장수들과 만나 따졌고, 유비는 상수를 경계로 하는 데 응했다. 연도는 건안 20년에 맞춘 값.

연의: 연의 66회 — 연의 66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54 「肅住益陽,與羽相拒」

217년 · 횡강장군

건안 22년 46세로 죽고 손권이 장례에 임한다.

정사 노숙전: 건안 22년 46세로 졸했다. 손권이 애도하고 장례에 임했다. 제갈량도 애도를 표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權為舉哀,又臨其葬」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9주유가 병중에 천거해 군사 4천을 이어받았고 육구에서 병력이 만여 명으로 늘었다(노숙전).
무력50무력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익양에서 관우와 단도회(單刀會)로 대면한 일은 있다).
지력94손권에게 "한실은 부흥할 수 없고 조조는 쉬이 제거할 수 없으니 강동에 솥발처럼 서서 천하의 틈을 보자"는 대책(鼎足江東)을 냈다(노숙전).
정치85익양에서 관우와 대치하다 화해로 마쳐 상수를 경계로 삼게 했다(노숙전).
매력87창고 쌀 한 곳집(3천 곡)을 주유에게 내주었고 재산을 뿌려 향읍의 환심을 샀다(노숙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노숙의 이동 경로

오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