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61년 — 태평 원년(256) 졸 향년 96세로 역산
사망 256년 — 태평 원년 졸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9년 | 기타·재야 | (광릉 해릉 출신, 난을 피해 남쪽으로 건너옴) | 불명 |
| 200~214년 | 오 | 여요장 | 불명 |
| 215~219년 | 오 | 소신중랑장·여릉태수(뒤에) | 불명 |
| 220~225년 | 오 | 교주자사 | 불명 |
| 226~230년 | 오 | 안남장군 | 불명 |
| 231~239년 | 오 | 진남장군 | 불명 |
| 240~251년 | 오 | 교주목(겸) | 불명 |
| 252~256년 | 오 | 대사마 | 불명 |
여요장으로 정병 천여 명을 모집하고 회계 동야 5현의 여합·진랑 반란을 장흠 등과 평정한다.
정사 여대전: 손권이 통사를 맡자 막부에 가 오승(吳丞)이 되고 록사를 거쳐 여요장이 되어 정병 천여 명을 모았다. 회계 동야 5현의 여합·진랑이 난을 일으키자 독군교위로 장흠 등과 토벌해 사로잡았고 소신중랑장이 되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遂擒合、狼,五縣平定」
건안 20년 장사 3군을 취하러 갔다가 장사를 지키고, 관우와 내통한 안성장 오탕·중랑장 원룡을 평정한다.
정사 여대전: 건안 20년 손무 등 10장을 거느려 장사 3군을 취했고 손권이 여대를 장사에 두었다. 안성장 오탕과 중랑장 원룡 등이 관우와 내통해 반란하자 오탕은 유현에, 원룡은 예릉에 있었는데 여대가 예릉을 공격해 원룡을 베었다. 이후 여릉태수가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督孫茂等十將從取長沙三郡」
연강 원년 보즐을 대신해 교주자사가 되어 고량 적수 전박을 받아들이고 계양·정양 적 왕금을 사로잡는다.
정사 여대전: 연강 원년 보즐을 대신해 교주자사가 되었다. 고량 적수 전박이 항복을 청하자 도위로 삼았고 울림 이적을 쳐부수었으며 계양·정양 적 왕금을 생포해 전송했다. 안남장군, 가절, 도향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代步騭為交州刺史」
사섭 사후 사휘가 반란하자 3천 병력으로 밤낮 바다를 건너 급습, 사휘 형제를 항복시켜 모두 죽이고 구진까지 평정한다.
정사 여대전: 사섭이 죽자 손권이 사휘를 안원장군·구진태수로 삼고 진시를 교지태수로 삼았다. 여대는 해남 3군을 교주로, 해동 4군을 광주로 나누어 광주자사가 되었고, 사휘가 거부하자 군 3천으로 밤낮 바다를 건너 합포에서 대량과 합류했다. 사휘가 놀라 형제 6명이 맨몸으로 나와 맞았고 여대가 모두 베어 머리를 보냈으며, 따르던 관·진치 등의 공격도 크게 깼다. 번우후. 이어 구진까지 토벌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即率兄弟六人肉袒迎岱」
황룡 3년 남토가 맑아지자 장사 구구로 돌아와 태상 반준과 함께 무릉 만이를 토벌한다.
정사 여대전: 황룡 3년 남쪽이 평정되자 여대를 불러 장사 구구에 주둔하게 했다. 무릉 만이가 준동하자 태상 반준과 함께 토벌해 평정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召岱還屯長沙漚口」
가화 3년 반장의 병사를 거느려 육구에 주둔했다가 포기로 옮긴다. 이듬해 여릉의 이환·회계 수춘 등 4곳의 반란을 토벌한다.
정사 여대전: 가화 3년 손권이 여대에게 반장의 병사를 거느리게 하고 육구에 주둔하게 했다가 포기로 옮겼다. 4년 여릉 이환·노합, 회계 동야 수춘, 남해 나려 등이 동시에 일어나자 유찬·당자 등을 감독해 나누어 토벌하여 모두 평정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屯陸口」
무릉에서 형주 문서를 맡고 있다가 영릉·창오·울림의 소요를 일으킨 요식의 반란을 밤낮으로 달려가 1년 만에 평정한다.
정사 여대전: 반준이 죽자 여대가 반준을 대신해 형주 문서를 맡았고 육손과 무창에 함께 있었다. 요식이 난을 일으켜 영릉·창오·울림이 소란하자 여대가 스스로 표를 올려 달려갔고 손권이 교주목을 제수했으며 당자 등과 1년 만에 평정, 요식과 그 가짜 임명자 비양 등을 베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육손 사망(245) 이전 적오 연간으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岱自表輒行,星夜兼路」
손량이 즉위하자 대사마에 오른다.
정사 여대전: 육손이 죽고 제갈각이 대신하자 손권이 무창을 둘로 나누어 여대가 우부를 맡았고 상대장군이 되었다. 손량이 즉위하자 대사마. 이때 나이 80이 넘었으나 몸이 정정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孫亮即位,拜大司馬」
태평 원년 96세로 죽고 검소한 장례를 명한다.
정사 여대전: 태평 원년 96세로 졸했고 아들 여개가 뒤를 이었다. 유언으로 소관·거친 베옷으로 장례하게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年九十六卒」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4 | 교주에서 사휘의 반란을 3천 병력으로 밤낮으로 바다를 건너 기습해 평정하고 구진을 토벌했다(여대전). |
| 무력 | 64 | 80세가 넘어서도 말에 훌쩍 올라탄다고 장승이 전하고 몸소 일을 처리했다(여대전). |
| 지력 | 70 | 병력으로 빠르게 기습해야 한다고 판단해 적이 성을 지키기 전에 쳤다(여대전). |
| 정치 | 83 | 교주를 평정한 뒤 부남·임읍·당명 등 변방 밖 여러 왕의 조공을 이끌어 냈다(여대전). |
| 매력 | 66 | 오랫동안 집에 돈을 보내지 못해 처자가 굶주려도 청렴했고 손권이 이를 알고 한탄했다(여대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여대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