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8년 — 향년 42세로 역산
사망 219년 — 건안 24년 공안 내전(內殿)에서 병사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8년 | 하구 | 횡야중랑장 | 기록 |
| 209년 | 이릉 | 편장군·심양령 | 기록 |
| 214년 | 환성 | 여강태수 | 기록 |
| 217년 | 유수구 | 좌호군·호위장군 | 기록 |
| 219년 | 강릉 | 남군태수·잔릉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207년 | 기타·재야 | (여남 부피 출신, 남쪽으로 건너와 매형 등당에게 의탁) | 불명 |
| 208년 | 오 | 횡야중랑장 | 기록 |
| 209년 | 오 | 편장군·심양령 | 기록 |
| 210~213년 | 오 | 편장군·심양령 | 불명 |
| 214년 | 오 | 여강태수 | 기록 |
| 215~216년 | 오 | (영릉·장사·계양 정벌) | 불명 |
| 217년 | 오 | 좌호군·호위장군 | 기록 |
| 218년 | 오 | 좌호군·호위장군 | 불명 |
| 219년 | 오 | 남군태수·잔릉후 | 기록 |
황조 토벌에서 선봉을 맡아 수군을 이끈 진취의 목을 벤다.
정사 여몽전: 황조가 도독 진취를 수군으로 맞서게 하자 여몽이 전봉이 되어 직접 진취를 베었고, 장병이 승세를 타 성을 공격해 황조를 사로잡았다. 횡야중랑장.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하구 전투(황조 토벌)
출전: 三國志 卷54 「親梟就首」
이릉에서 포위된 감녕을 구하고 남군을 얻는다.
정사 여몽전: 주유·정보와 오림에서 조공을 깬 뒤 남군에서 조인을 포위했다. 감녕이 이릉에서 포위되자 여몽이 능통을 남겨 두고 주유와 함께 가 포위를 풀고 길을 막아 말 300필을 얻었으며, 조인이 물러나 남군을 차지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蒙保公績能十日守也」
손권의 환성 공격에서 감녕을 승성독으로 천거하고 북을 직접 쳐 병사를 독려, 한 끼 먹을 새에 성을 깬다.
정사 여몽전: 조조가 주광을 여강태수로 보내 환성에 둔전하자 여몽이 일찍 제거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손권이 환성을 칠 때 감녕을 승성독으로 삼고 여몽은 정예로 뒤따라 북을 쳐 새벽에 공격해 식시(오전 중) 무렵 깼다. 연도는 건안 19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蒙手執枹鼓」
영릉태수 학보를 옛 친구 등현지를 통해 설득해 싸우지 않고 항복받는다.
정사 여몽전: 유비가 공안에 와서 관우로 세 군을 다투자 손권이 여몽을 익양으로 불렀다. 여몽은 영릉을 공격하기 전날 밤 장수들에게 계획을 알리고, 학보의 옛 친구 남양 등현지를 보내 설득하게 해 학보가 항복했다. 유비가 맹약을 청해 상수를 경계로 삼고 영릉을 돌려주었다. 연도는 건안 20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普見書,知備在公安」
합비 철수 때 장료의 기습에서 능통과 함께 손권을 죽음으로 지킨다.
정사 여몽전: 합비를 친 뒤 철수하다가 장료 등의 습격을 받아 여몽이 능통과 함께 죽음으로 호위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蒙與淩統以死扦衛」
조조가 유수로 크게 나오자 앞서 쌓은 보루에 강노 만 장을 배치해 막는다.
정사 여몽전: 조조가 다시 유수로 크게 나오자 손권이 여몽을 독으로 삼았고, 앞서 쌓은 보루에 강노 만 장을 설치해 조공의 전봉 둔을 깨뜨리자 조공이 물러났다. 연도는 조조의 유수 출정(217)에 맞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置強弩萬張於其上」
관우가 번성을 공격하자 병을 핑계로 건업에 돌아가 방비를 풀게 한 뒤 상인으로 위장한 병사로 남군을 취하고 사인·미방의 항복을 받는다.
정사 여몽전: 관우가 번성을 치며 병력을 남겨 공안·남군을 방비하자 여몽이 병을 이유로 건업에 돌아가 관우의 방비를 풀게 했고, 정예를 배 안에 숨기고 흰옷 입은 사공에게 노를 젓게 해 상인 차림으로 밤낮 달려 강변 초소를 모두 사로잡아 남군에서 사인·미방의 항복을 받았다. 이어 관우는 맥성으로 달아났다.
연의: 연의 75회 — 연의 75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54 「使白衣搖櫓,作商賈人服」
군영 안에서 민가의 삿갓을 가져간 고향 병사를 눈물로 참한다.
정사 여몽전: 같은 고향 병사가 관의 갑옷을 덮으려 민가의 삿갓 하나를 가져가자 군령을 어겼다 하여 눈물을 흘리며 베었고 군중이 두려워해 길에 흘린 물건도 줍지 않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遂垂涕斬之」
공안에서 병이 깊어져 내전에서 42세로 죽는다.
정사 여몽전: 남군태수·잔릉후에 봉했으나 봉작이 내려오기 전에 병이 도졌고 손권이 공안의 내전으로 옮겨 치료했으나 42세로 졸했다. 219년 말로 둠(정사에 월 기재 없음).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年四十二,遂卒於內殿」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5 | 관우를 속이려 병을 핑계로 건업에 돌아가 방비를 풀게 한 뒤 병사들을 상인으로 위장해 강릉을 습격했다(여몽전). |
| 무력 | 73 | 황조 정벌에서 선봉에 서서 진취를 직접 벴다(여몽전). |
| 지력 | 94 | 오림에서 조조를 깬 뒤 이릉 구원, 환성 함락, 영릉 항복 설득 등 계책을 다수 올렸다(여몽전). |
| 정치 | 75 | 남군을 점령한 뒤 군령을 어긴 같은 고향 병사를 눈물로 참하고 노인과 병자를 보살펴 형주 민심을 안정시켰다(여몽전). |
| 매력 | 75 | 손권이 병이 들자 벽에 구멍을 내 몰래 얼굴을 보고 먹는 모습에 기뻐했다(여몽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여몽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