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42년 — 「81세에 졸」로만 적혀 연도 없음. 마지막 연도 기록(이궁 개설)에 맞춘 자리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28년 | 환성 | 편장군 | 추정 |
| 234년 | 성도 | 시중·중집법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0~218년 | 오 | 기도위 | 불명 |
| 219~227년 | 오 | 충의교위 | 불명 |
| 228년 | 오 | 편장군 | 추정 |
| 229~233년 | 오 | 편장군 | 불명 |
| 234년 | 오 | 시중·중집법 | 기록 |
| 235~241년 | 오 | 시중·중집법 | 불명 |
| 242년 | 오 | 상서복야·노왕 사부 | 불명 |
손권이 통사를 맡자 글로 불러 군국의 기밀을 맡긴다.
정사 시의전: 유요를 의지해 강동에 왔다가 유요의 군이 무너지자 회계로 옮겼다. 손권이 대업을 이으며 우문으로 징소하자 이르러 친임받아 기밀을 전담하고 기도위가 되었다. 연도는 손권 통사 직후(200년대)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2 「孫權承攝大業,優文征儀」
여몽이 관우를 습격할 계획을 올리자 손권이 시의에게 묻고, 시의가 그 계획이 좋다 하여 실행하게 한다.
정사 시의전: 여몽이 관우를 습격하려 하자 손권이 시의에게 물었고 시의가 그 계책을 좋게 여겨 따르라고 권했다. 관우 토벌에 따라가 충의교위가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2 「儀善其計,勸權聽之」
황무 중 시의를 환으로 보내 장군 유소와 함께 조휴를 꾀어내게 하여 조휴가 크게 패한다.
정사 시의전: 황무 중 시의를 환으로 보내 장군 유소 곁에서 조휴를 꾀어내게 했고 조휴가 이르러 크게 패했다. 시의는 편장군이 되어 궐에 들어가 상서의 일을 살폈다. 연도는 석정 전투(황무 7년, 228).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2 「遣儀之皖就將軍劉邵,欲誘致曹休」
제갈량이 죽자 손권이 촉과의 동맹을 굳히려 시의를 사신으로 보낸다.
정사 시의전: 촉 승상 제갈량이 죽자 손권이 서쪽 주에 마음을 두어 시의를 사신으로 보내 맹약을 굳게 했다. 일을 뜻대로 마쳐 돌아와 상서복야가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2 「遣儀使蜀申固盟好」
교사 여일이 강하태수 도가를 비방죄로 고발했을 때 다른 이들이 두려워 증언할 때 시의만 「들은 바 없다」고 버틴다.
정사 시의전: 전교랑 여일이 옛 강하태수 도가가 국정을 비방했다고 무고하여 손권이 도가를 옥에 가두고 같이 있던 이들을 심문했다. 모두 여일이 두려워 들었다고 했으나 시의만 「들은 바 없다」고 했고 여러 날 추궁받았으나 칼이 목에 있어도 도가를 위해 숨겨 불충한 귀신이 될 수 없다며 사실대로 답하고 흔들리지 않아 손권이 놓아주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여일 사건(적오 초)으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2 「儀獨雲無聞」
남궁·노왕의 두 궁이 세워지자 노왕 사부를 맡아 두 궁의 위계를 낮춰야 한다고 여러 번 상소한다.
정사 시의전: 남·노 두 궁이 처음 세워지자 시의가 노왕 사부가 되었다. 두 궁이 너무 가까이 있다고 보아 노왕을 방어를 위해 사방을 진수하는 번보로 내보내고 상하의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서너 차례 상소했다. 연도는 두 궁이 세워진 적오 5년(242)에 맞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2 「臣竊以魯王天挺懿德」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지력 | 63 | 여몽의 관우 습격 계획에 손권이 물었을 때 계책이 좋다고 보아 그 계획에 따르게 했다(시의전). |
| 정치 | 79 | 여일이 고발한 강하태수 도가의 사건에 다른 이들이 모두 두려워 거짓 증언해도 홀로 「들은 바 없다」고 했다(시의전). |
| 매력 | 77 | 청렴해 집은 한 몸 들어갈 만큼만 짓고 손권이 직접 와서 소찬을 맛보고 탄식해 봉록을 늘렸다(시의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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