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신은 정말 910km를 걸었나 — 장거리 이동을 사서로 바로잡은 일
경고가 네 번 울렸습니다
장수가 한 해 안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연도별 지점으로 적어 두면, 지점 사이의 길을 계산해서 이동 경로가 그려집니다. 이때 한 번의 이동 거리가 800km를 넘으면 경고가 울리게 해 두었습니다(check_stops). 사서에 적힌 지점이 하나 빠졌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까요.
초한지에서는 이 경고가 네 번 울렸습니다. 한신이 진창에서 팽성으로 간 길 910km, 장량이 포중에서 팽성으로 간 길 963km, 그리고 호해가 함양에서 갈석으로 간 길 1,118km와 이사가 따라간 같은 구간입니다.
경고가 울렸다고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천 킬로미터 가까운 길이 실제로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하나씩 원문을 열어 봤습니다.
한신: 「出關」 두 글자
한신의 지점은 기원전 206년 8월 진창에서 다음 해 4월 팽성으로 이어집니다. 근거는 『사기』 회음후열전의 대목입니다.
「八月,漢王舉兵東出陳倉,定三秦。漢二年,出關,收魏、河南…四月,至彭城」
진창에서 팽성까지 8개월 사이에 있었던 일로, 한 줄로 뭉뚱그려 적혀 있습니다. 가운데에 「出關」, 관을 나갔다는 한 마디가 있어요. 이 관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함곡관이 가장 자연스럽지만, 원문이 함곡관이라고 적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신의 경유지에 함곡관을 넣고, 「出關=함곡관 해석」이라고 출처 칸에 적고, 순서의 확실성을 「추정」으로 표시했습니다. 이 해석은 제 판단입니다. 910km는 이제 진창에서 함곡관, 함곡관에서 팽성으로 나뉘어 계산됩니다.

한신의 기원전 205년 이동 경로. 진창 일대에서 함곡관을 거쳐 동쪽 팽성으로 향하는 선들이 겹쳐 보입니다. 점선은 경로를 추정한 구간입니다.
장량: 「韓」이 어디냐
장량도 비슷했습니다. 『사기』 유후세가는 「良至韓…從與俱東…殺之彭城」, 장량이 한(韓)에 이르러 함께 동쪽으로 갔고 팽성에서 그를 죽였다고 적습니다. 한으로 갔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한이 어디냐는 말이 없어요.
저는 이 한을 한왕 성의 도읍, 양적으로 읽었습니다. 이 역시 해석이라서 「韓=한왕 성의 도읍 양적으로 본 것」이라고 출처 칸에 적고 「추정」으로 표시했습니다. 963km는 포중에서 양적, 양적에서 팽성으로 나뉩니다.

장량의 기원전 206년 이동 경로. 홍문과 관중 일대에서 동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선이 보입니다.
호해: 이번엔 원문이 말해 줬습니다
호해와 이사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사기』 진시황본기가 그 길을 직접 적고 있었어요.
「二世東行郡縣,李斯從。到碣石,并海,南至會稽」
2세 황제가 군현을 순행하고 이사가 따랐으며, 갈석에 이르러 바다를 끼고 남쪽으로 회계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이 경우는 해석이 필요 없는 기록이라서, 호해와 이사의 경유지에 회계를 그대로 넣고 원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진시황본기』는 뒤에 「遂至遼東而還」, 마침내 요동에 이르렀다 돌아왔다고도 적습니다. 그런데 요동에 해당하는 지명이 아직 지도에 없어서 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건에는 800km 경고가 지금도 남아 있어요. 원문이 이 순행을 시기별로 나누지 않는 점도 이유입니다.

호해(진 2세)의 기원전 209년 화면. 함양에서 북동쪽 갈석으로 올라갔다가 남쪽 회계 쪽으로 내려가는 긴 점선이 보입니다.
해석은 해석이라고 적는 법
정리하면 네 건 중 둘(한신, 장량)은 제가 원문의 한마디를 풀어 읽은 경유지이고, 나머지 둘(호해와 이사의 회계)은 원문이 직접 적은 경유지입니다. 이 차이를 화면에서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넣은 경유지 네 건 모두에 원문 구절과 「추정」 표시를 달았습니다. 읽는 분이 의심하고 싶을 때 의심할 자리를 남겨 둔 겁니다.
그리고 제목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한신이 진창에서 팽성까지 간 것은 사서가 적었습니다. 910km라는 숫자는 지도가 그 사이를 계산한 값이고, 그 사이에 함곡관이 있었다는 건 제 해석입니다. 걸었는지는 사서가 답했고, 어디를 거쳤는지는 제가 답했습니다. 둘을 섞지 않으려고 이 글을 씁니다.
초한지 아틀라스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victor-house.com/chu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