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신안에서 묻힌 20만, 서통의 빈칸 — 위치를 모르는 곳을 표시하는 법
경로 여섯 개가 빠져 있었습니다
초한지 지도를 처음 빌드한 날, 장수들의 이동 경로를 점검하다가 여섯 쌍이 빠져 있는 걸 알았습니다. 출발지나 도착지 가운데 좌표가 없는 곳이 있으면 길을 이을 수 없으니까요. 범인은 둘이었습니다. 신안과 서통.
둘 다 사료에 분명히 나오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위치를 한 점으로 줄이기 어려웠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점이 아니었어요. 같은 빈칸이어도 채우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신안, 진나라 군사 20만
신안은 『사기』 항우본기에 나옵니다. 「楚軍夜擊阬秦卒二十餘萬人新安城南」, 초나라 군대가 밤에 진나라 항복 군사 20여만을 신안성 남쪽에서 쳐서 묻었다는 대목이에요. 이 일이 있고 나서 항우는 함곡관으로 향합니다. 지도의 함곡관 입관 전투에서 항우군의 출발지가 바로 신안입니다.
지금의 위치는 위키가 낙양의 신안현으로 적고, 좌표는 현의 행정 중심(동경 112.13도, 북위 34.73도)입니다. 문제는 한나라 때 옛 성이 지금 현성 자리가 아니라는 설이 있다는 거예요. 『괄지지』에 「漢新安縣城即坑秦卒處」라는 대목이 있고(보도를 거쳐 인용), 한대 고성은 현재 현성에서 서쪽 의마(義馬)의 이십리포 일대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했습니다. 현의 좌표를 넣되, 좌표 수준을 「현」으로 적고 정확한 지점은 아니라는 설명을 달았습니다. 지도 위에서 신안이라는 이름은 보이지만, 그 점이 현급까지만 맞다는 걸 데이터가 스스로 말하게 한 거예요. 이 좌표가 들어가면서 신안이 걸려 있던 경로 네 개가 이어졌습니다.

함곡관 입관(기원전 206년) 화면. 신안에서 함곡관으로 가는 항우군의 경로와 정사 주(항우본기·고조본기)가 함께 보입니다.
신안의 선택은 삼국지 답중과 달랐습니다
삼국지 연재 2편에서 답중이라는 지명에 학설이 다섯 있었고, 저는 그중 하나를 골랐다고 적었습니다. 신안은 달랐어요. 다섯 설 가운데 고르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설을 그대로 쓰되 오차가 현 단위라는 걸 표시하는 일이었습니다. 학설이 갈리면 고르고 고른 걸 적고, 위치는 알지만 정확도가 떨어지면 그 정도를 적습니다. 두 경우를 섞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통은 점이 아니었습니다
서통은 더 달랐습니다. 이름이 서(徐)와 동(僮), 두 현 사이의 구간을 가리킵니다. 사료는 영포가 반란을 일으킨 뒤 초나라 군대가 「서·동 사이」에서 세 갈래로 나뉘어 싸웠다고 적습니다. 이 말은 지점이 아니라 지역이에요. 지명 사전에서 점 하나로 못 찍는 곳을 억지로 점으로 만들면, 그 점은 근거 없는 좌표가 됩니다.
그래서 서통은 지점 목록에서 「불명」으로 두었습니다. 서통이 걸린 장수 이동 경로 두 쌍은 이을 수 없어서 지금도 빠져 있어요. 대신 영포 토벌 전투의 진군로 위에는 이름 그대로 「서·동 사이」라는 지점을 두고 추정 표시를 달았습니다. 점이라기보다 이 길이 이쯤을 지나간다는 표시입니다.

영포 토벌(기원전 196년) 화면. 정사 주의 「서·동 사이에서 3군으로 나뉘어 싸우다」라는 대목이 보입니다. 이 구간은 점이 아니라 지역이라서 지점 이름이 「서·동 사이」입니다.
위치를 모르는 곳을 표시하는 세 가지 방법
두 곳을 처리하며 정리한 규칙입니다.
- 위치는 알지만 정확도가 모자라면, 좌표를 넣고 좌표 수준(현, 지점 등)을 적는다.
- 학설이 갈리면 하나를 고르고, 고른 것이라고 적고, 다른 설도 후보로 남긴다.
- 점이 아닌 지역이나 구간이면 점을 지어 넣지 않고 「불명」으로 두며, 길 위에서는 이름 그대로의 구간으로 표시한다.
빈칸이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건 빈칸이 빈칸처럼 안 보이는 지도예요. 다음 글에서는 이 이동 경로 이야기를 이어서, 한 번에 천 킬로미터 가까이 움직였다고 계산된 기록들을 어떻게 사서로 바로잡았는지 이야기합니다.
초한지 아틀라스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victor-house.com/chu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