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계산이 3,688m 산을 넘겼습니다 — 틀린 길을 사람이 잡은 날
최고 고도 표에서 눈에 띈 숫자
전투 길을 모두 계산하고, 구간마다 가장 높은 곳을 뽑아 표로 만들었습니다. 4천 미터가 넘는 칸이 몇 줄 보였어요. 그중 하나가 성도에서 문산(汶山)으로 가는 길, 4,267m였습니다.
성도는 촉한의 수도이고, 문산은 서북쪽 변경의 군입니다. 두 곳을 오가던 길이 군대가 넘을 수 없는 높이의 산 위로 나 있을 리는 없죠. 표를 같이 보니 이런 줄이 더 있었습니다.
| 구간 | 계산이 낸 최고 고도 |
|---|---|
| 성도~문산 | 4,267m |
| 적도~면죽 | 4,177m |
| 성도~적도 | 4,177m |
| 곡산~문산 | 4,177m |
(높이를 읽는 격자를 바꾸면 숫자가 몇 m씩 달라집니다. 이 글의 숫자는 고치기 전과 후를 같은 방식으로 다시 잰 값입니다.)
계산이 틀린 건 아닙니다. 두 칸 사이를 가장 싸게 가는 길을 정확히 찾았고, 그 길이 산이었을 뿐이에요. 계산이 아는 건 높이뿐이라서, 그 길이 당시 사람들이 다니던 길인지는 몰랐던 겁니다. 고쳐야 할 건 계산이 아니라 길목이었습니다.
사람이 길목을 넣었습니다
길 계산 엔진의 가중치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길 하나가 이상하다고 모든 길의 규칙을 바꾸면 안 되니까요. 대신 길목, 그러니까 반드시 지나야 하는 지명을 문헌 근거와 함께 넣었습니다.
성도~문산에는 관구(灌口)와 위주(威州)를 넣었습니다. 근거는 위키 문서입니다. 문천현 문서가 「绵虒县治旧址在今汶川县威州镇, 汶山县治在今都江堰市灌口镇」, 그러니까 옛 면저현 자리는 지금의 위주진이고 한나라 문산현 자리는 지금의 도강언시 관구진이라고 적었어요. 두 곳이 민강 협곡 길 위에 있다는 건 구간 고도로만 확인했고, 고갯길 높이를 적은 문헌은 못 찾았습니다.
결과를 구간별로 보면 관구까지 730m, 관구~위주 1,475m, 위주~문산 1,576m. 4,267m였던 최고 고도가 1,576m로 내려왔습니다. 군대가 협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그려진 거예요.

요립의 228년 화면. 성도에서 문산으로 가는 이동 경로이고, 점선은 경로를 추정한 구간입니다.
등애가 넘은 길
적도에서 면죽으로 가는 길에는 답중→음평→마천령→강유를 순서대로 넣었습니다. 등애가 쓴 길입니다. 『삼국지』 등애전의 「艾自陰平道行無人之地七百餘里…先登至江由」, 종회전의 「鄧艾追姜維到陰平…入江由…詣綿竹」가 근거예요.
그런데 4,177m가 3,688m로 내려오는 데서 멈췄습니다. 등애가 실제로 넘은 구간, 음평부터 성도까지의 최고 고도는 앞 글에서 본 2,640m 정도입니다. 높은 건 그 앞이었어요. 남은 3,688m는 적도에서 답중으로 가는 구간에서 나왔고, 답중에서 음평으로 가는 구간도 3,373m였습니다. 둘 다 처음부터 있던 구간이라 이번에 넣은 길목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근거가 약해도 넣은 길이 둘 있습니다
성도~적도는 한중을 거쳐 기산, 천수로 가는 길로 바꿨습니다. 4,177m가 2,370m로 내려왔어요. 근거는 제갈량 북벌 문서의 「226年將大軍進駐漢中」「向祁山進攻」, 그리고 『강유전』의 「隨蔣琬住漢中」입니다.
여기에는 솔직한 단서가 붙습니다. 장익이 한중을 거쳐 갔다는 직접 기록은 못 찾았습니다. 촉군의 한중 기지와 기산 진출로를 근거로 삼은 추정이에요. 곡산~문산은 이 길을 그대로 이어서 4,177m를 2,924m로 낮췄는데, 이쪽은 더 약합니다. 곡산에서 문산까지 직접 가는 길의 기록은 못 찾았고, 강유가 한중에 있었다는 기록이 전부입니다. 거리도 358km에서 훨씬 늘어난 우회가 됐어요.
그래서 두 길에는 「추정」이라는 표시를 달았습니다. 높이가 내려갔다는 이유만으로 맞는 길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낮아진 숫자는 보기 좋지만, 계산이 틀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근거가 없는 길도 틀릴 수 있습니다.
끝내 못 푼 구간
네 길 가운데 3,000m 아래로 내려온 건 셋(1,576m, 2,370m, 2,924m)이고, 하나는 못 내렸습니다. 적도~면죽의 3,688m가 그것입니다.
고치려면 적도~답중 사이에 경유지를 넣어야 합니다. 조하(洮河)와 백룡강(白龍江) 쪽에서 적도와 답중을 이은 옛길이 어딘지 문헌으로 확인해야 하는데, 넣을 근거를 아직 못 찾았어요. 근거 없이 경유지를 만들어 넣으면 숫자는 내려가겠지만, 그건 지난 글들에서 정한 원칙(모르는 건 지어 채우지 않는다)을 어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 고치지 않고 남겨 두었어요.
참고로 이 구간의 높이는 답중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움직입니다. 2편에서 본 것처럼 학설마다 같은 길의 최고 고도가 수백 미터씩 달랐으니까요. 그래서 이 숫자는 길 하나의 문제이면서 답중이라는 점 하나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작업은 한 번에 하나씩, 메모리 407MB 안에서 돌렸습니다. 왜 그렇게 조심했는지는 다음 글에서 말씀드릴게요.

강유의 255년 화면. 답중 부근을 지나 남북으로 이어지는 이동 경로입니다. 점선은 경로를 추정한 구간입니다.
삼국지 아틀라스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victor-house.com/sangu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