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기록 없음 — 사서에는 「美人名虞」(항우본기), 「美人姓虞氏」(한서 항적전)로만 나온다. 「姬」는 후세의 호칭이다.
사망 몰년 불명 — 기록 없음 — 항우본기·한서는 「歌數闋,美人和之」 이후 우의 일을 적지 않는다. 자결설은 사서 본문에 없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2년 | 해하 | (기록 없음 — 항우 곁에 있던 미인)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3년 | 초 | (기록 없음 — 항우 곁에 있던 미인) | 불명 |
| -202년 | 초 | (기록 없음 — 항우 곁에 있던 미인) | 기록 |
해하에서 포위된 항우의 밤 술자리에 곁에 있다가, 항우의 시 「虞兮虞兮柰若何」에 화답한다. 사서의 기록은 여기까지다.
정사 항우본기: 해하에서 한군과 제후군이 여러 겹으로 에워싸고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리자 항우가 장막에서 술을 들었다. 늘 곁에 따르던 미인 우(虞)가 있었고, 항우가 「虞兮虞兮柰若何」라 노래하자 미인이 이에 화답했다. 이름 외에 출신·죽음·연도는 사서에 없다. 한서 항적전은 「姓虞氏」라 적는다.
관련: 해하 전투
출전: 史記 卷007 「有美人名虞常幸從駿馬名騅常騎之」 / 史記 卷007 「歌數闋美人和之」 / 漢書 卷031 「有美人姓虞氏常幸從」
정사 항우본기: 해하에서 한군과 제후군에 겹겹이 둘러싸인 항우는 밤에 사방의 초나라 노래를 듣고 놀라 우미인과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기병 800여 명과 밤에 포위를 뚫고 남으로 달아났고, 새벽에야 안 한군은 기장 관영에게 기병 5천을 주어 추격시켰다. 회수를 건널 때 따르는 기병은 100여 명, 음릉에서 길을 잃고 늪에 빠져 따라잡혔고, 동성에 이르렀을 때는 28기였다. 항우는 세 곳으로 나눈 돌격으로 한 장수와 도위를 베었으나, 오강에서 정장이 배를 대고 강동 재기를 권하자 거절하고 말을 주고 걸어서 싸우다 몸에 십여 군데 상처를 입고 여마동에게 "내가 너에게 덕을 베풀겠다"며 스스로 목을 찔렀다. 왕예·양희·여마동·여승·양무가 몸을 나눠 가졌다.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군 지휘 기록 없음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 없음 |
| 지력 | 평가 불가 | 지력 기록 없음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치 기록 없음 |
| 매력 | 평가 불가 | 항우가 늘 곁에 두고(常幸從)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는 서술만 있다(항우본기). 수치는 매기지 않고 null.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우희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