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양하 사람, 자 숙).
사망 -208년 — 二世 2년 겨울쯤 — 형양을 포위하다 부장 전장 등이 왕명을 사칭해 죽였다(陳涉世家: 「因相與矯王令以誅吳叔」). 달·일은 원문에 없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9년 | 대택향 | 둔장→도위→가왕(장초) | 기록 |
| -208년 | 형양 | 둔장→도위→가왕(장초)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8년 | 초 | 둔장→도위→가왕(장초) | 기록 |
대택향에서 진승과 함께 둔장 직을 걸고 모반해 도위가 된다.
정사 진섭세가: 2세 원년 7월 어양 수자리로 가던 900명이 대택향에서 비로 기일을 어겼다. 오광이 일부러 장위를 격분시켜 매 맞게 한 뒤 칼을 빼앗아 죽였고, 진승과 함께 단을 쌓고 맹세해 대초를 칭했다. 진승이 장군, 오광이 도위가 되었다.
관련: 대택향 봉기
출전: 史記 卷048 「尉劍挺廣起奪而殺尉」 / 史記 卷048 「陳勝自立為將軍吳廣為都尉」
진승이 왕을 칭한 뒤 가왕이 되어 제장을 감독하고 서쪽 형양을 치러 간다.
정사 진섭세가: 진승이 진에서 왕이 되어 장초라 부르자, 오숙을 가왕으로 삼아 제장을 감독하며 서쪽 형양을 치게 했다.
관련: 대택향 봉기
출전: 史記 卷048 「乃以吳叔為假王監諸將以西擊滎陽」
형양을 에워쌌으나 삼천수 이유가 지켜 함락하지 못하고, 전장 등이 왕명을 사칭해 그를 죽인다.
정사 진섭세가: 오광이 형양을 에워쌌으나 삼천수 이유가 지켜 이기지 못했다. 장군 전장 등이 「가왕이 교만해 병권을 모른다」며 왕명을 사칭해 오숙을 죽이고 머리를 진왕에게 바쳤다.
출전: 史記 卷048 「李由為三川守守滎陽吳叔弗能下」 / 史記 卷048 「因相與矯王令以誅吳叔」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3 | 가왕으로 서쪽 형양을 쳤으나 이유가 지키는 성을 끝내 함락하지 못했다(진섭세가). |
| 무력 | 57 | 직접 칼을 뽑아 진(秦) 장위를 죽이고 둔장 무리를 이끌었다(진섭세가). |
| 지력 | 63 | 일부러 도망하겠다고 해 장위를 격분시켜 무리를 선동했고, 여우 울음 등으로 사졸을 위압하는 계책을 진승과 함께 냈다(진섭세가). |
| 정치 | 39 | 가왕으로 제장을 감독했으나 군권에 오만하다는 평으로 부장에게 살해당한다(진섭세가: 「今假王驕不知兵權」). |
| 매력 | 74 | 평소 사람을 아껴 사졸이 많이 따랐다(「吳廣素愛人士卒多為用者」).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오광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