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 기현(蘄縣) 옥연(獄掾) 출신으로 항량 때부터 알려졌다
사망 -203년 — 한 4년(-203) 사수 위에서 자결(「自剄汜水上」). 달은 본문에 없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3년 | 사수(정도) | 해춘후·대사마 — 성고 수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4년 | 초 | (기록 없음 — 옛 기현 옥연(獄掾), 항량과 인연) | 불명 |
| -203년 | 초 | 해춘후·대사마 — 성고 수비 | 기록 |
항우가 동쪽으로 팽월을 치러 가며 성고를 지키되 한이 싸움을 걸어도 응하지 말라고 맡긴다.
정사 항우본기: 항우가 해춘후 대사마 조구 등에게 「성고를 삼가 지키고 한이 싸움을 걸어도 절대 응하지 말아 동쪽으로만 가지 못하게 하라, 나는 15일 안에 팽월을 베고 양 땅을 평정해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조구는 본래 기현의 옥연(獄掾)으로 항량에게 덕을 베푼 일이 있어 항우가 신임했다(옛 일: 항량의 역양 체포 건에 사마흔에게 편지를 써 줌).
관련: 사수 전투
출전: 史記 卷007 「項王乃謂海春侯大司馬曹咎等曰謹守成皋則漢欲挑戰慎勿與戰毋令得東而已」 / 史記 卷007 「大司馬咎者故蘄獄掾」 / 史記 卷007 「兩人嘗有德於項梁是以項王信任之」
한군의 욕설 도발에 사수를 건너다 반쯤 건넌 때 한군에게 대패하고 사마흔과 함께 사수 위에서 자결한다.
정사 항우본기: 한군이 여러 차례 싸움을 걸고 5~6일 욕설로 도발하자 대사마가 노해 사수를 건넜다. 병사가 절반쯤 건넌 때 한군이 쳐 초군을 크게 깨고 초의 재물을 모두 얻었다. 대사마 조구·장사 예·새왕 흔은 모두 사수 위에서 스스로 목을 쳤다. 조구가 처음 맡은 본래 임무는 성고 수비였다.
관련: 사수 전투
출전: 史記 卷007 「使人辱之五六日大司馬怒渡兵汜水」 / 史記 卷007 「士卒半渡漢擊之大破楚軍盡得楚國貨賂」 / 史記 卷007 「大司馬咎長史翳塞王欣皆自剄汜水上」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39 | 성고를 맡았으나 한군의 도발에 넘어가 사수를 건너다 대패했다(항우본기). |
| 무력 | 평가 불가 | 기록이 없다. |
| 지력 | 27 | 「慎勿與戰」이라는 항우 명을 지키지 못했다(항우본기). |
| 정치 | 50 | 기현 옥연으로 항량에게 편지를 써 도운 일이 있다(항우본기). |
| 매력 | 50 | 항우가 신임했다는 기록(항우본기). 값은 추정이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구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