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리매(鍾離眛)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초출생 생년 불명사망 -201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 종리매는 항우 휘하 장수로 한 4년(-203)에 처음 본문에 나온다

사망 -201년 — 한 6년(-201) — 회음후열전은 한신이 초왕으로 간 직후(한 6년) 일로 적고, 진초지제월표는 한 5년(-202) 항에 「종리매를 얻어 베어 알렸다」고 적어 한 해 어긋난다. 달은 12월(운몽 순행 위장 시기)로 추정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3년형양초 장수 — 항우 휘하기록
-201년하비(항우 사후) 초왕 한신에게 의탁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04년기타(행적 기록 없음)불명
-203년초초 장수 — 항우 휘하기록
-202년초초 장수 — 항우 휘하불명
-201년한(항우 사후) 초왕 한신에게 의탁기록

나온 사건·전투

-203년 · 초 장수 — 항우 휘하

한군에게 형양 동쪽에서 포위되었다가 항우가 이르자 한군이 물러나 풀려난다.

정사 항우본기: 한군이 형양 동쪽에서 종리매를 포위하고 있었는데 항우가 이르자 한군이 초군을 두려워해 모두 험한 곳으로 달아났다. 고조본기도 같은 일을 적는다. 연대는 한 4년(-203), 달은 기록이 없다.

관련: 사수 전투

출전: 史記 卷007 「漢軍方圍鐘離眛於滎陽東項王至漢軍畏楚盡走險阻」 / 史記 卷008 「漢軍方圍鐘離眛於滎陽東項羽至盡走險阻」

-201년 · (항우 사후) 초왕 한신에게 의탁

초왕 한신에게 의탁했다가 한신이 자기 목을 바치려 하자 한신을 꾸짖고 스스로 목을 쳐 죽는다.

정사 회음후열전: 항왕의 도망 장수 종리매는 집이 이려(伊廬)에 있고 평소 한신과 친했는데, 항왕이 죽은 뒤 한신에게 갔다. 한왕이 종리매를 미워해 초에 체포를 명했다. 한 6년 운몽 순행으로 위장해 한신을 치려 하자 한신이 「매를 베어 알현하면 반드시 기뻐하실 것」이라는 말을 듣고 종리매와 상의했다. 종리매는 「한이 초를 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공에게 있기 때문이니, 나를 팔면 나는 오늘 죽고 공도 곧 망한다」며 한신을 「장자가 아니다」라고 꾸짖고 끝내 스스로 목을 쳤다. 한신은 그 머리를 들고 진에서 고조를 알현했다. 죽은 장소는 열전에 없어 한신의 도읍 하비로 추정하고, 달은 12월(운몽 위장 순행과 같은 때)로 추정한다.

출전: 史記 卷092 「項王亡將鐘離眛家在伊廬素與信善」 / 史記 卷092 「斬眛謁上上必喜無患」 / 史記 卷092 「乃罵信曰公非長者卒自剄」 / 史記 卷008 「十二月人有上變事告楚王信謀反」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1년 · 운몽 한신 체포

정사 회음후열전·고조본기: 한 6년(-201) 누군가 초왕 한신의 반역을 고하자 고제가 신하들과 의논했고, 진평의 계책으로 천자가 순행하며 남쪽 운몽에서 제후를 만난다 하고 제후에게 진에 모이라고 사자를 보냈다. 실은 한신을 습격하려는 것이었고 한신은 알지 못했다. 한신은 반란을 일으킬까 했으나 죄가 없다 하여 스스로 찾아뵈려 했고, 누군가 종리매의 목을 베어 가면 기뻐할 것이라 권했다. 종리매는 한신을 꾸짖고 자결했고 한신은 그 목을 들고 진에서 고조를 알현했으나 무사들에게 결박당해 뒷수레에 실렸다. 한신은 「狡兔死良狗亨」이라 말했고 낙양에 이르러 사면되어 회음후가 되었다. 고조본기는 이 일을 한 6년 12월로 적는다.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7한군이 형양 동쪽에서 그를 포위했다는 기록 외에 지휘 사례가 적다(항우본기).
무력평가 불가개인 무용 기록은 없어 장수 평판에서 추정한 값이다.
지력57한신을 설득해 자기를 팔면 한신도 오래 가지 못한다고 일러 주었다(회음후열전).
정치평가 불가정치 업적 기록은 없다.
매력55한신이 평소 친했고 죽은 뒤에도 그를 숨겨 주었으며, 한이 그를 걱정해 체포령까지 내렸다(회음후열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종리매의 이동 경로

초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