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오(共敖)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초출생 생년 불명사망 몰년 불명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원문에 없음

사망 몰년 불명 — 한 5년(-202) 이전 사망, 연도 원문에 없음(「初項羽所立臨江王共敖前死子尉嗣立爲王不降」, 한서 고제기). 아들은 사기에서 「驩」, 한서에서 「尉」·「共尉」로 적힌다.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6년강릉임강왕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07년초의제 주국(연대 불명)불명
-206년초임강왕기록
-205~-195년초임강왕불명

나온 사건·전투

-206년 · 임강왕

항우가 제후왕을 봉할 때, 의제의 주국으로 병력을 이끌고 남군을 쳐 공이 많은 공오를 임강왕으로 세워 강릉에 도읍하게 한다.

정사 항우본기: 의제 주국 공오가 병력을 이끌고 남군을 쳐 공이 많아 임강왕에 세워졌고 강릉에 도읍했다. 한 원년 2월의 일(「漢元年二月」 제후왕 봉립).

출전: 史記 卷007 「義帝柱國共敖將兵擊南郡功多因立敖為臨江王都江陵」

-206년 · 임강왕

항우가 의제를 장사 침현으로 옮기게 하자 의제의 신하들이 흩어지고, 항우의 은밀한 명령으로 형산왕·임강왕이 의제를 강 위에서 죽인다.

정사 항우본기: 항우가 의제를 장사 침현으로 옮기게 하고 재촉하자 신하들이 등을 돌렸고, 항우는 몰래 형산왕과 임강왕에게 명해 의제를 강 가운데서 죽이게 했다. 항우본기는 한 원년 4월 제후가 봉국으로 간 뒤의 일로 적는다(정확한 달은 불명).

출전: 史記 卷007 「乃陰令衡山臨江王擊殺之江中」 / 史記 卷008 「乃陰令衡山王臨江王擊之殺義帝江南」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7의제(회왕)의 주국으로 병력을 이끌고 남군을 쳐 공이 많아 임강왕이 되었다(항우본기).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은 없다.
지력평가 불가독자적인 책략 기록은 없다.
정치50임강왕으로 강릉에 도읍했으나 통치 기록은 원문에 없다.
매력평가 불가기록이 없다.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공오의 이동 경로

초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