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
사망 227년 — 졸년 전문에 명기 없음 — 명제 즉위 후 졸. 마지막 기록 연도(227)까지 칸을 둠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7년 | 완 | 교위 | 기록 |
| 200년 | 관도 | 교위 | 기록 |
| 211년 | 동관 | 교위 | 기록 |
| 220년 | 낙양 | 무위장군(중군 숙위 도독)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5년 | 기타·재야 | (초현 일대 호족·종족 수천 가를 모아 방어) | 불명 |
| 196년 | 위 | 도위(숙위) | 불명 |
| 197년 | 위 | 교위 | 기록 |
| 198~199년 | 위 | 교위 | 불명 |
| 200년 | 위 | 교위 | 기록 |
| 201~210년 | 위 | 교위 | 불명 |
| 211년 | 위 | 교위 | 기록 |
| 212~219년 | 위 | 무위중랑장→중견장군 | 불명 |
| 220년 | 위 | 무위장군(중군 숙위 도독) | 기록 |
| 221~226년 | 위 | 무위장군(중군 숙위 도독) | 불명 |
| 227년 | 위 | 무위장군·모향후 | 불명 |
장수 정벌 때 선등으로 만 명 단위를 베어 교위가 된다.
정사 허저전: 조조가 장수를 칠 때 선등해 수급 만 단위를 베어 교위가 되었다.
연의: 연의 16회
출전: 三國志 卷18 「從徵張繡先登斬首萬計遷校尉」
관도에서 서타 등 모반을 알아채고 쳐 죽인다.
정사 허저전: 관도 때 서타 등이 허저가 곁에 있어 두려워 일을 일으키지 못하다 허저가 쉬는 날 칼을 품고 들어왔는데, 허저가 마음이 동해 급히 돌아가 서타 등을 쳐 죽였고 조조는 더욱 신임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8 「他等不知入帳見褚大驚愕」 / 三國志 卷18 「褚覺之即擊殺他等」
동관에서 마초가 조조를 습격하자 배를 몰아 도하하며 조조를 지킨다.
정사 허저전: 조조가 위수를 건널 때 허저와 호사 백여 명이 남안에 남아 후위를 맡았고 마초가 보기 1만여 명으로 화살을 비 오듯 쏘자, 허저는 조조를 배에 태워 배를 매달린 자를 베고 왼손으로 말안장을 들어 조조를 가리며 오른손으로 노를 저어 건넜다.
연의: 연의 59회
출전: 三國志 卷18 「褚斬攀船者左手舉馬鞍蔽太祖」 / 三國志 卷18 「是日微褚幾危」
조조와 마초가 말 위에서 대화할 때 곁을 지켜 마초가 덤비지 못하게 한다.
정사 허저전: 조조가 한수·마초와 단기로 회담할 때 허저만 곁에 있었고, 마초가 "호후는 어디 있느냐"고 묻자 조조가 허저를 가리켰으며 허저가 노려보자 마초는 움직이지 못했다. 군중은 허저를 힘센 호랑이 같고 어리숙하다 하여 "호치"라 불렀다.
연의: 연의 59회
출전: 三國志 卷18 「公有虎侯者安在」 / 三國志 卷18 「故號曰虎痴」
조조가 죽자 피를 토하며 통곡한다.
정사 허저전: 태조가 붕어하자 허저는 부르짖으며 피를 토했고, 문제 즉위 후 만세정후·무위장군으로 중군 숙위 금병을 도독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8 「太祖崩褚號泣歐血」
정사 무제기: 195년 봄 조조가 정도를 습격했고, 여름 여포의 장수 설란·이봉이 거야에 주둔하자 조조가 공격했다. 여포가 구원했으나 설란이 패해 여포는 달아났고, 조조는 설란 등을 벴다. 여포가 동민에서 진궁과 1만여 명을 이끌고 다시 오자 조조는 병력이 적어 매복을 두고 기병을 풀어 크게 이겼다. 여포는 밤에 달아났고 조조가 정도를 다시 얻으니 여포는 동쪽 유비에게로 갔다.
연의: 연의 12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8 | 동관 도하 때 조조를 지켜 배를 끌고 가며 마초의 공격을 막았다(허저전). |
| 무력 | 96 | "호치(虎痴)"로 불릴 만큼 힘이 세 소 꼬리를 한 손으로 끌어당겨 도적을 쫓았다(허저전). |
| 지력 | 50 | 말수가 적고 삼갔으며 모함을 시도한 서타 등을 직접 쳐 죽였다(허저전). |
| 정치 | 50 | "외번과 내신은 사사로이 사귈 수 없다"며 조인의 부름도 거절해 조조의 신뢰를 샀다(허저전). |
| 매력 | 59 | 허저를 따르던 협객이 호사가 되어 훗날 장군·후가 된 이가 수십 명이었다(허저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허저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