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5년경(추정) — 생년 불명(17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38년 — 사망 연도 불명 — 경초 연간 궁실 간언 이후 재직 중 졸(양부전). 238년경으로 추정.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7년 | 천수 | 양주 별가 → 효렴 | 추정 |
| 208년 | 천수 | 양주 별가 → 효렴 | 추정 |
| 209년 | 천수 | 양주 별가 → 효렴 | 추정 |
| 210년 | 천수 | 양주 별가 → 효렴 | 추정 |
| 212년 | 천수 | 기성 수성 → 노성에서 기병해 마초 격퇴 | 기록 |
| 230년 | 낙양 | 장작대장 → 소부 | 기록 |
| 231년 | 낙양 | 장작대장 → 소부 | 기록 |
| 232년 | 낙양 | 장작대장 → 소부 | 기록 |
| 233년 | 낙양 | 장작대장 → 소부 | 기록 |
| 234년 | 낙양 | 장작대장 → 소부 | 기록 |
| 235년 | 낙양 | 소부 | 추정 |
| 236년 | 낙양 | 소부 | 추정 |
| 237년 | 낙양 | 소부 | 기록 |
| 238년 | 낙양 | 소부 — 졸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0~206년 | 기타·재야 | 주종사 → 안정장사(위 단의 사자로 허에 감) | 불명 |
| 207~210년 | 기타·재야 | 양주 별가 → 효렴 | 추정 |
| 211년 | 위 | 승상부 → 주 참군사 | 불명 |
| 212년 | 위 | 기성 수성 → 노성에서 기병해 마초 격퇴 | 기록 |
| 213~215년 | 위 | 관내후(공에 따라 열후 11인에 들어감) | 불명 |
| 216~218년 | 위 | 익주자사(조조 한중 정벌 때) → 금성태수 → 무도태수 | 불명 |
| 219년 | 위 | 무도태수 — 무도 주민 이주 | 불명 |
| 220~229년 | 위 | 무도태수 → 성문교위 | 불명 |
| 230~234년 | 위 | 장작대장 → 소부 | 기록 |
| 235~236년 | 위 | 소부 | 추정 |
| 237년 | 위 | 소부 | 기록 |
| 238년 | 위 | 소부 — 졸 | 기록 |
마초가 농우 군현을 석권해 기성만 주군을 받들고 굳게 지키자, 양부가 천여 명으로 편월 영을 쌓아 정월부터 8월까지 버틴다. 구원이 오지 않아 자사·태수가 항복하려 하자 울며 죽도록 지키겠다고 간하나 끝내 성문이 열린다. 그해 9월 강서·조앙 등과 노성에서 기병해 기성 문을 닫아 마초를 쫓아낸다.
정사 양부전: 마초가 농우의 무리를 모두 아우르고 장로가 다시 대장 양앙을 보내 도우니 1만여 명이 기성을 쳤다. 양부는 국사 대부와 종족 자제 중 싸울 수 있는 천여 명을 이끌고 종제 양악에게 성 위에 언월영을 짓게 해 마초와 접전했고, 정월부터 8월까지 버텼으나 구원이 오지 않았다. 별가 염온이 몰래 나가 구원을 청하다 마초에게 죽자 자사·태수가 항복할 계획을 세웠고 양부는 울며 간했으나 끝내 성문을 열고 마초를 맞이했다. 건안 17년 9월 양부는 강서와 함께 노성에서 기병했고 양관·조구 등이 기성의 문을 닫아 마초의 처자를 쳤다. 양부는 마초와 싸워 다섯 곳에 상처를 입고 종족 형제 7명이 죽었으며, 마초는 남쪽 장로에게 달아났다.
연의: 연의 64회 — 연의 64회도 양부·강서가 마초를 몰아내는 줄거리를 다룬다.
출전: 三國志 卷25 본 「約誓旣明十七年九月與叙起兵於鹵城超聞阜等兵起自將出而衢寬等解岳閉冀城門討超妻子」
유비가 한중을 차지해 하변을 압박하자 조조가 외진 무도를 옮기려 하나 백성이 고향을 그리워할 것을 걱정하는데, 신망이 높은 양부가 1만여 호를 경조·부풍·천수 경계로 이주시켜 소괴리에 군을 옮긴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219년경으로 추정.
정사 양부전: 유비가 한중을 취해 하변을 핍박하자 조조는 무도가 외지고 멀어 옮기려 했으나 관리와 백성이 고향을 그리워할까 걱정했다. 양부는 위신이 평소 드러나 있어 앞뒤로 백성과 저를 옮겨 경조·부풍·천수 경계에 살게 한 것이 1만여 호였고, 군을 소괴리로 옮겨 백성이 업고 따랐다. 정치는 대강만 들어도 아랫사람이 속이지 못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5 본 「及劉備取漢中以逼下辯太祖以武都孤遠欲移之恐吏民戀土阜威信素著前後徙民氐使居京兆扶風天水界者萬餘戶」
궁실 확장을 멈추지 않는 명제에게 '나라가 망해도 신만 홀로 살 수 있다면 말하지 않겠다. 군은 머리, 신은 팔다리이니 존망과 득실이 같다'며 관을 두드려 목욕하고 중벌을 기다린다고 간해 명제가 감동해 손수 답한다. 경초 연간.
정사 양부전: 경초 연간 양부가 상소해 '나라가 망해도 신만 독존할 수 있다면 말씀드리지 않겠다. 군이 머리가 되고 신이 팔다리가 되어 존망이 한 몸이고 득실을 함께한다'며 '삼가 관을 두드리고 목욕하여 엎드려 중벌을 기다린다'고 했다. 천자가 충언에 감동해 손수 조서로 답했다. 조정 회의마다 양부는 늘 정색하고 천하를 자기 일로 삼았고 자주 간쟁하나 듣지 않자 물러나기를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마침 죽어 집에 남은 재산이 없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5 본 「使國亡而臣可以獨存臣又不言也君作元首臣爲股肱存亡一體得失同之」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0 | 기성에서 천여 명으로 마초·장로군 1만여를 상대해 정월부터 8월까지 버텼고, 뒤에 노성에서 기병해 마초를 몰아냈다(양부전). |
| 무력 | 70 | 마초와 싸우다 다섯 군데 상처를 입고 종족 형제 7명이 죽었다(양부전). |
| 지력 | 75 | 원소는 관대하나 결단이 없다는 평으로 조조의 승리를 예견했다(양부전). 마초의 용맹이 강·호 마음을 얻은 것을 경고했다. |
| 정치 | 78 | 무도태수로서 1만여 호를 경조·부풍·천수로 옮겼고 정치는 대강만 들되 아랫사람이 속이지 못했다(양부전). |
| 매력 | 72 | 명제에게 궁실 확장을 간하며 '관을 두드려 목욕하고 중벌을 기다린다'고 했다(양부전). 가난하게 죽었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양부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