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楊俊)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22년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

사망 222년 — 황초 3년(222) — 완에서 문제의 분노로 체포되자 자살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7년완남양태수기록
208년완남양태수추정
209년완남양태수추정
210년완남양태수추정
211년완남양태수추정
212년완남양태수추정
213년완남양태수추정
214년완남양태수추정
215년완남양태수추정
219년업중위→평원태수기록
220년완남양태수추정
221년완남양태수추정
222년완남양태수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6년후한 조정(하내 획가 출신·피난)불명
197~206년위곡량장·승상연속·안릉령불명
207년위남양태수기록
208~215년위남양태수추정
216~218년위정남군사→중위불명
219년위중위→평원태수기록
220~221년위남양태수추정
222년위남양태수기록

나온 사건·전투

207년 · 남양태수

남양태수로서 학교를 세우고 교화를 베풀어 이민의 칭송을 받는다.

정사 양준전: 안릉령에서 남양태수로 옮긴 양준은 덕교를 베풀고 학교를 세워 이민이 칭송했다. 왕상은 문제 때 "다시 남양을 맡아 은덕이 흘러 이웃이 포대기에 업고 온다"고 천거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宣德敎立學校吏民稱之」

219년 · 중위→평원태수

조조의 한중 원정 중 업에서 위풍이 반란하자 중위 양준이 자핵해 행재소로 가고 태자의 눈 밖에 나 평원태수로 좌천된다.

정사 양준전: 조조가 한중을 정벌하는 사이 위풍이 업에서 반란하자 양준이 스스로 탄핵해 행재소로 갔고 태자에게 편지로 사의했는데 태자가 불쾌해 "너무 높고 멀다"고 하며 문서로 평원태수로 좌천시켰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魏諷反於鄴俊自劾詣行在所」 / 三國志 卷23 「遂被書左遷平原太守」

222년 · 남양태수 · 사망

황초 3년 문제가 완에 이르러 시장이 번성하지 않다며 노해 양준을 체포하자 자살한다.

정사 양준전: 황초 3년 문제가 완에 이르러 시장이 풍성하지 않다고 노해 양준을 잡았고 사마의·왕상·순위가 머리를 조아려 피를 흘리며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아 양준은 "죄를 알겠다"며 자살했고 사람들이 원통해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以巿不豐樂發怒收俊」 / 三國志 卷23 「俊曰吾知罪矣遂自殺」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군사 기록은 없다(양준전).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은 없다.
지력71사마의가 16, 7세일 때 비범하다고 평했고, 노복이던 왕상을 속량해 키웠다(양준전).
정치76남양태수로 학교를 세워 교화했고 두 번 맡아 은덕이 퍼졌다(양준전).
매력76인물 감별을 자임해 관리 후진을 많이 키웠다(양준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양준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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