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선(徐宣)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34년기록 연도 10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직 요청 때 68세).

사망 234년 — 청룡 4년(234) 죽음. 시호 정후(서선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11년허창좌호군(마초 반란 때 군을 통솔)기록
220년낙양위군태수(조조 사망 때 숙위 안정)기록
226년낙양상서 → 좌복야(명제 때)기록
227년낙양상서 → 좌복야(명제 때)기록
228년낙양상서 → 좌복야(명제 때)기록
229년낙양상서 → 좌복야(명제 때)기록
230년낙양상서 → 좌복야(명제 때)기록
231년낙양상서 → 좌복야(명제 때)기록
232년낙양상서 → 좌복야(명제 때)기록
233년낙양상서 → 좌복야(명제 때)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210년후한 조정(광릉 해서 출신, 손책의 부름을 사양, 연대 불명)불명
211년위좌호군(마초 반란 때 군을 통솔)기록
212~219년위승상 동조연 → 위군태수불명
220년위위군태수(조조 사망 때 숙위 안정)기록
221~225년위어사중승 → 성문교위 → 사예교위 → 상서불명
226~233년위상서 → 좌복야(명제 때)기록
234년위좌복야(사망)불명

나온 사건·전투

220년 · 위군태수(조조 사망 때 숙위 안정)

조조가 낙양에서 죽자 군신이 궁중에서 곡할 때 '성을 지키는 사람을 초·패 사람으로 바꾸자'는 말에 호통쳐 막는다.

정사 서선전: 조조가 낙양에서 죽자 신하들이 궁에서 곡했다. 누군가 '모든 성의 수비를 초·패 사람으로 바꾸자'고 하자 서선이 소리 높여 '지금은 멀고 가까운 곳이 통일되고 사람마다 절개를 바치는데 어찌 초·패 사람만 쓰겠습니까. 숙위자의 마음을 꺾는 일입니다'라 했다. 문제가 듣고 '사직의 신하'라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2 「何必譙、沛,而沮宿衛者心」

226년 · 상서 → 좌복야(명제 때) · 승진

명제가 즉위해 환범의 추천으로 서선을 좌복야로 삼는다.

정사 서선전: 명제가 즉위하자 중령군 환범이 서선을 추천해 '복야가 비었으니 서선이 뒷일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명제가 서선을 좌복야로 삼았고 이어 시중·광록대부를 더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2 「帝遂以宣為左僕射」

234년 · 좌복야(사망) · 대패

청룡 4년 죽는다. 포의·소건으로 염하라고 유언했고 명제가 거기장군을 추증한다.

정사 서선전: 청룡 4년 죽었다. 유언으로 포의와 거친 건으로 때 옷을 입혀 염하라고 했다. 명제가 '기둥과 주춧돌 같은 신하'라며 거기장군을 추증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2 「遺令布衣疏巾,斂以時服」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0군 지휘 기록은 없다. 마초 반란으로 조조가 서쪽으로 갈 때 좌호군으로 남아 모든 군을 통솔했다(서선전).
무력평가 불가무력 기록이 없다.
지력69해서·회포 반란 때 무력이 약한 독군 호질에게 형세를 일러 줘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서선전).
정치83군 태수·상서복야를 지내며 위엄 있는 형벌의 지나침과 궁전 건설을 간하는 상소를 올렸고 명제가 손수 조서로 칭찬했다(서선전).
매력75조조 사망 때 '초·패 사람을 쓰자'는 의견에 '숙위자들의 마음을 꺾는다'고 반대했고 문제가 사직지신이라 칭했다(서선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서선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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