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혁(徐奕)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165년경(추정)사망 220년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165년경(추정) — 생년 불명(165년경,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20년 — 중위가 된 지 수개월 만에 병으로 사직해 간의대부로 죽음. 연도는 본문에 없고 220년은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11년장안승상장사·옹주자사추정
212년장안승상장사·옹주자사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4년기타·재야(동완 출신, 강동으로 피난)불명
195~210년위사공연속불명
211년위승상장사·옹주자사추정
212년위승상장사·옹주자사기록
213~218년위동조속→위군태수→유부장사→상서→상서령불명
219~220년위중위→간의대부불명

나온 사건·전투

212년 · 승상장사·옹주자사

마초를 깬 뒤 관중이 안정되지 않자 승상장사로 남아 서경을 진무한다.

정사 서혁전: 사공연속으로 마초 정벌을 따랐고 마초가 깨져 군이 돌아올 때 관중이 막 복속해 불안하므로 서혁을 승상장사로 남겨 서경을 진무하게 했다. 서경이 그의 위신을 칭찬했다. 마초 격파 이듬해(212년경)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從西征馬超超破軍還時关中新服未甚安留奕爲丞相長史镇撫西京」

219년 · 중위→간의대부

위풍의 반란으로 양준이 좌천되자 환계의 추천으로 중위가 된다.

정사 서혁전: 조조가 한중을 칠 때 위풍 등이 반란하여 중위 양준이 좌천되었다. 조조가 제갈풍 같은 이가 있으면 대신하겠다고 하자 환계가 "서혁이 그 사람"이라 해 중위로 삼았다. 위풍의 반란은 219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桓階曰徐奕其人也太祖乃以奕爲中尉」

220년 · 중위→간의대부

중위가 된 지 수개월 만에 병이 깊어져 물러나 간의대부로 죽는다.

정사 서혁전: 직에 있은 지 수개월 만에 병이 깊어져 사직을 청하고 간의대부를 받았다가 죽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220년으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본 「在職數月疾篤乞退拜諫議大夫卒」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0마초를 깨고 관중이 막 복속했을 때 승상장사로 남아 서경을 진무했다(서혁전).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 없음(서혁전).
지력67정의 등이 총애받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곧게 버텼다(서혁전).
정치78위군태수·상서·상서령으로 선거를 맡았고 중위로는 수개월만 있었다(서혁전).
매력64조조가 "군의 충량은 옛사람도 넘지 못한다"고 했으나 너무 엄하다고 경계했다(서혁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서혁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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