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95년경(추정) — 생년 불명(19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46년 — 연희 9년(246) 졸(동윤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21년 | 성도 | 태자 사인 → 세마 | 기록 |
| 222년 | 성도 | 태자 사인 → 세마 | 기록 |
| 223년 | 성도 | 황문시랑 | 기록 |
| 224년 | 성도 | 황문시랑 | 기록 |
| 225년 | 성도 | 황문시랑 | 기록 |
| 226년 | 성도 | 황문시랑 | 기록 |
| 227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28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29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30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31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32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33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34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35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36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37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38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39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40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41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42년 | 성도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43년 | 성도 | 시중·보국장군 | 기록 |
| 244년 | 성도 | 시중·수상서령 | 기록 |
| 245년 | 성도 | 시중·수상서령 | 기록 |
| 246년 | 성도 | 시중·수상서령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21~222년 | 촉한 | 태자 사인 → 세마 | 기록 |
| 223~226년 | 촉한 | 황문시랑 | 기록 |
| 227~242년 | 촉한 | 시중·영호분중랑장 | 기록 |
| 243년 | 촉한 | 시중·보국장군 | 기록 |
| 244~246년 | 촉한 | 시중·수상서령 | 기록 |
제갈량이 북벌을 앞두고 곽유지·비의·동윤에게 궁중의 일을 맡기는 표(출사표)를 올리고, 동윤은 시중·영호분중랑장이 되어 숙위 친병을 통솔한다.
정사 동윤전: 승상 제갈량이 북정을 나서 한중에 주둔하게 되자 후주가 나이 어려 분별이 어려울 것을 염려해 동윤의 마음이 공정하고 밝다 하여 궁중의 일을 맡기려 했다. 상소로 곽유지·비의·동윤 등에게 맡기라 했고 이어 비의를 참군으로 불러 동윤은 시중에 올라 호분중랑장을 겸해 숙위 친병을 통솔했다.
연의: 연의 91회
출전: 三國志 卷39 본 「亮尋請禕為參軍允遷為侍中領虎賁中郎將統宿衛親兵」
후궁을 늘리려는 후주를 '고대 천자의 후비는 열둘을 넘지 않는다'며 막고, 환관 황호가 접근하면 정색하고 꾸짖어 황호가 관직 황문승을 넘지 못하게 눌렀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장완 집정기(235년경)로 둠.
정사 동윤전: 후주가 후궁을 늘리려 하자 동윤이 '고대 천자의 후비는 열둘을 넘지 않으니 이미 갖춰진 빈장을 늘릴 수 없다'며 끝까지 듣지 않았다. 후주가 환관 황호를 아꼈으나 동윤이 위로는 임금을 정색해 바로잡고 아래로는 황호를 자주 꾸짖어, 동윤의 생전 황호의 지위는 황문승에 불과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9 본 「允處事為防制甚盡匡救之理後主常欲採擇以充后宮允以為古者天子后妃之數不過十二」
연희 9년에 죽는다. 뒤를 이은 진지가 황호와 결탁해 정사를 흔들었고, 촉 사람은 동윤을 추모했다.
정사 동윤전: 연희 6년 보국장군을 더했고 7년 시중으로 상서령을 지키며 대장군 비의의 부이가 되었다. 9년에 죽었다. 진지가 뒤를 이어 시중이 되자 황호와 안팎으로 어울려 황호가 정사에 관여했고, 촉 사람은 동윤을 추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9 본 「蜀人無不追思允」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1 | 시중으로서 호분중랑장을 겸해 숙위 친병을 통솔했다(동윤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 없음. |
| 지력 | 73 | 후주가 후궁을 늘리려 하자 '고대 천자의 후비는 열둘을 넘지 않는다'며 끝내 막았다(동윤전). |
| 정치 | 83 | 제갈량이 후주 곁의 궁중 일을 맡길 만하다 하여 시중에 올렸다. 환관 황호를 꾸짖어 눌렀다(동윤전). |
| 매력 | 72 | '동윤이 죽자 촉 사람은 모두 그를 추모했다'(동윤전). 사사로운 하사를 사양했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동윤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