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6년 — 건안 25년(220) 45세 졸에서 역산(법정전)
사망 220년 — 건안 25년(220), 향년 45세(법정전). 한중왕 즉위(219) 이듬해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1년 | 성도 | 군의교위(유비 영입 사자) | 기록 |
| 212년 | 부성 | (유비의 참모로 입촉 수행) | 추정 |
| 213년 | 부성 | (유비의 참모로 입촉 수행) | 추정 |
| 214년 | 성도 | 촉군태수·양무장군 | 기록 |
| 217년 | 성도 | 촉군태수 — 한중 공략 건의 | 기록 |
| 218년 | 한중 | 촉군태수 — 한중 종군 | 추정 |
| 219년 | 한중 | 상서령·호군장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6~210년 | 유장·익주 | 신도령 → 군의교위 | 불명 |
| 211년 | 유장·익주 | 군의교위(유비 영입 사자) | 기록 |
| 212~213년 | 촉한 | (유비의 참모로 입촉 수행) | 추정 |
| 214년 | 촉한 | 촉군태수·양무장군 | 기록 |
| 215~216년 | 촉한 | 촉군태수·양무장군 | 불명 |
| 217년 | 촉한 | 촉군태수 — 한중 공략 건의 | 기록 |
| 218년 | 촉한 | 촉군태수 — 한중 종군 | 추정 |
| 219년 | 촉한 | 상서령·호군장군 | 기록 |
| 220년 | 촉한 | 상서령·호군장군 | 불명 |
장송과 함께 유비를 익주로 맞아들이는 사자로 가고, 유비에게 유장을 칠 계책을 은밀히 올린다.
정사 법정전: 건안 연간 법정은 맹달과 함께 입촉해 유장에게 의탁했다. 별가 장송의 천거로 사자로 가 선주에게 '명장군의 영재로 유장의 나약함을 이용하라'고 은밀히 계책을 올렸다. 연도는 본문에 없다.
연의: 연의 60회
출전: 三國志 卷37 본 「以明將軍之英才乘劉牧之懦弱張松州之股肱以響應於內然後資益州之殷富馮天府之險阻以此成業猶反掌也」
성도 포위 중 허정을 중용하라 건의하고, 익주 평정 뒤 촉군태수·양무장군이 되어 안팎의 모주가 된다.
정사 법정전: 건안 19년 성도를 포위했을 때 허정을 푸대접하면 천하가 선주를 현자를 천시한다 할 것이라며 후하게 대하라 했고, 선주는 그렇게 했다. 법정은 촉군태수·양무장군이 되어 밖으로 도읍 일대를 다스리고 안으로는 모주가 되었다.
연의: 연의 65회
출전: 三國志 卷37 본 「以正為蜀郡太守揚武將軍外統都畿內為謀主」
조조가 장로를 항복시키고도 남하하지 않은 허점을 들어 한중 공략을 건의한다. 건안 22년.
정사 법정전: 22년 법정이 '조조는 장로를 항복시키고도 이 기세로 파·촉을 도모하지 않았고, 하후연·장합만 남기고 돌아갔다. 이 둘의 재략은 국가의 장수에 못 미치니 쳐서 이길 수 있다'고 선주에게 말했다.
연의: 연의 70회
출전: 三國志 卷37 본 「曹操一舉而降張魯定漢中不因此勢以圖巴蜀而留夏侯淵張郃屯守身遽北還此非其智不逮而力不足也」
정군산에서 하후연 군이 접근하자 '지금 칠 수 있다'고 하여 황충에게 높은 데서 공격하게 해 하후연을 벤다. 한중왕 즉위 뒤 상서령·호군장군이 된다.
정사 법정전: 건안 24년 선주가 양평에서 면수를 건너 정군·흥세에 진영을 세우자 하후연이 와서 다투었다. 법정이 '칠 수 있다'고 했고, 선주가 황충에게 높은 곳에서 북을 울리며 공격하게 해 하후연 군을 대파하고 하후연의 목을 얻었다.
연의: 연의 70회
관련: 정군산 전투와 한수 공방
출전: 三國志 卷37 본 「先主命黃忠乘高鼓譟攻之大破淵軍淵等授首」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2 | 유비의 한중 진공 계책을 세우고 정군산에서 '지금 칠 수 있다'고 하여 하후연을 대파하게 했다(법정전). |
| 무력 | 50 | 직접 무용 기록 없음. 정군산에서 황충에게 높은 데서 북을 울려 치게 했다(법정전). |
| 지력 | 99 | 한중 공략 계책을 세웠고 조조가 '현덕이 이를 생각했을 리 없다, 누군가 가르쳤다'고 했다(법정전). |
| 정치 | 68 | 촉군태수로서 사사로운 은원을 갚아 여럿을 죽였으나 제갈량이 제지하지 않았다(법정전). |
| 매력 | 57 | 제갈량이 '법효직이 주공을 날개처럼 도왔다'며 인정했다. 평은 '그러나 덕행으로 칭송받지는 못했다'(법정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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