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탄(諸葛誕)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58년기록 연도 5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사망 258년 — 감로 3년 2월 수춘성이 함락될 때 말을 타고 소성문으로 돌파하다 사마호분에게 목이 베임(258)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51년수춘진동장군·도독 양주기록
255년수춘진동대장군·의동삼사기록
256년수춘정동대장군기록
257년수춘정동대장군기록
258년수춘정동대장군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51년위진동장군·도독 양주기록
252~254년위진남장군불명
255년위진동대장군·의동삼사기록
256~258년위정동대장군기록

나온 사건·전투

251년 · 진동장군·도독 양주

왕릉의 모반 때 사마의가 몰래 동정하자 진동장군·가절·도독 양주로 삼는다.

정사 제갈탄전: 왕릉의 음모 때 태부 사마선왕이 몰래 군을 이끌고 동쪽을 치며 제갈탄을 진동장군·가절·도독양주제군사로 삼고 산양정후에 봉했다. 이전에 정시 초 어사중승·상서로 복귀했다가 양주자사로 나가 소무장군이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8 「以誕為鎮東將軍、假節都督揚州諸軍事」

252년 · 진남장군

제갈각이 동흥을 쌓자 제갈탄이 군을 이끌고 가서 싸웠으나 불리했다.

정사 제갈탄전: 제갈각이 동관(동흥)을 일으키자 제갈탄이 여러 군을 감독해 쳐 싸웠으나 불리했고 돌아와 진남장군이 되었다. 오서·제갈각전은 호준·제갈탄 등 7만이 동흥에서 대패한 것으로 적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8 「遣誕督諸軍討之,與戰,不利」

255년 · 진동대장군·의동삼사

관구검·문흠이 반란해 보낸 사자를 베고 격문을 천하에 알린 뒤 사마사의 동정을 따라 수춘으로 가 오군을 물리친다.

정사 제갈탄전: 관구검·문흠이 반란해 제갈탄에게 사자를 보내 예주 사민을 부르자 제갈탄은 그 사자를 베고 반란의 흉악함을 격문으로 천하에 알렸다. 사마경왕이 동정할 때 예주 군을 독하고 안풍진을 건너 수춘으로 갔고 관구검·문흠이 패하자 제갈탄이 먼저 수춘에 이르렀다. 오 장수 손준·여거·유찬 등이 문흠과 와서 수춘을 치려 했으나 성이 공략 불가해 달아났고 제갈탄이 장수 장반을 보내 추격해 유찬을 베었다. 연도는 정원 2년(255).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수춘 1반(관구검·문흠의 거병)

출전: 三國志 卷28 「誕斬其使,露布天下」

256년 · 정동대장군

고평후 3천5백 호에 올라 정동대장군이 되고 부고를 털어 재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

정사 제갈탄전: 고평후·식읍 3천5백 호에 올랐고 정동대장군이 되었다. 하후현·등양 등과 지친이고 왕릉·관구검이 연이어 멸망한 것을 보고 불안해 창고를 털어 베풀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친부와 양주 경협 수천 명을 키워 사사로운 병사로 삼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8 「轉為征東大將軍」

257년 · 정동대장군

감로 2년 5월 사공으로 소환되자 두려워 반란해 양주자사 악침을 죽이고 오에 구원을 청한다.

정사 제갈탄전: 감로 2년 5월 조정이 제갈탄을 사공으로 불렀으나 조서를 받은 제갈탄은 더욱 두려워 반란했고, 장수들을 모아 직접 양주자사 악침을 공격해 죽였다. 회남·회북 군현 둔전 10여 만의 관병과 양주 신부 4~5만을 모으고 곡식 1년치를 쌓아 성문을 닫고 자수했으며 장사 오강과 아들 제갈정을 오에 보내 구원을 청했다. 오는 전역·전단·당자·왕조 등 3만을 보내 문흠과 함께 호응했다.

연의: 연의 111회 — 연의 111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28 「召會諸將,自出攻揚州刺史樂綝,殺之」

258년 · 정동대장군 · 함락

감로 3년 정월 문흠·당자와 공성기구로 남쪽 포위를 5~6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문흠을 죽이는 등 내분이 나 수춘이 함락되며 소성문으로 달아나다 죽는다.

정사 제갈탄전: 3년 정월 문흠·당자 등과 공성기구를 갖추어 밤낮 5~6일 남쪽 포위를 공격했으나 위군이 석거와 화전으로 부수고 사상자가 땅을 덮었다. 성 안 식량이 바닥나 문흠이 북방 사람을 내보내자 했으나 제갈탄이 듣지 않아 서로 원한이 깊어졌고 제갈탄이 문흠을 죽였다. 대장군 사마소가 사면으로 성을 쳐 올라 제갈탄이 홀로 말을 타고 소성문으로 나갔으나 사마호분이 베고 삼족을 멸했다. 휘하 수백은 항복하지 않아 참수되며 「제갈공을 위해 죽으니 한이 없다」고 했다.

연의: 연의 112회 — 연의 112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28 「誕窘急,單乘馬,將其麾下突小城門出」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76감로 2년 반란해 수춘성에서 1년 가까이 버티며 사마소의 26만 포위를 견뎠다(제갈탄전).
무력62마지막에 말 한 필로 소성문을 돌파하려 했다(제갈탄전).
지력67동흥에서 제갈각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고, 관구검·문흠이 부를 때는 사자를 베어 격문을 천하에 알려 조정에 충성을 보였다(제갈탄전).
정치64회남 도독으로 있으면서 부고를 털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수천의 경협을 사사로이 길렀다(제갈탄전).
매력83부하 수백이 항복하지 않아 베이면서도 「제갈공을 위해 죽는 것은 한이 없다」고 했다(제갈탄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제갈탄의 이동 경로

위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