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195년 — 사망 연도 불명. 이각의 난 뒤 병사했다고만 서술된다(후한서 황보숭전: 尋李傕作亂,嵩亦病卒). 195년은 계산용 가정값이다. (추정)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84년 | 장사 | 좌중랑장(황건 토벌) | 기록 |
| 185년 | 장안 | 좌거기장군·기주목 → 면직(장양 등이 모함) | 추정 |
| 186년 | 장안 | 좌거기장군·기주목 → 면직(장양 등이 모함) | 추정 |
| 187년 | 장안 | 좌거기장군·기주목 → 면직(장양 등이 모함) | 추정 |
| 188년 | 진창 | 좌장군(진창 방어) | 기록 |
| 189년 | 장안 | 좌장군·북지(진창 이후, 연대 일부 추정) | 추정 |
| 190년 | 낙양 | 성문교위(동탁의 소환) | 기록 |
| 191년 | 장안 | 어사중승 | 추정 |
| 192년 | 장안 | 정서장군 → 거기장군(동탁 사망 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년 | 후한 조정 | 좌중랑장(황건 토벌) | 기록 |
| 185~187년 | 후한 조정 | 좌거기장군·기주목 → 면직(장양 등이 모함) | 추정 |
| 188년 | 후한 조정 | 좌장군(진창 방어) | 기록 |
| 189년 | 후한 조정 | 좌장군·북지(진창 이후, 연대 일부 추정) | 추정 |
| 190년 | 후한 조정 | 성문교위(동탁의 소환) | 기록 |
| 191년 | 후한 조정 | 어사중승 | 추정 |
| 192년 | 후한 조정 | 정서장군 → 거기장군(동탁 사망 후) | 기록 |
| 193~195년 | 후한 조정 | 태위 → 광록대부 → 태상 | 불명 |
장사에서 파재의 대군에게 포위되자 한밤에 불을 놓고 기습해 크게 이긴다. 조조가 이 싸움에 합류한다.
정사 후한서 황보숭전: 황보숭이 우중랑장 주준과 함께 영천 황건을 토벌했다. 주준이 파재에게 패하자 황보숭은 장사로 물러나 지켰다. 군사 수는 적었으나 바람 부는 저녁에 횃불로 성 위에서 불을 놓고 기습해 파재를 격파했다. 조조가 마침 도착해 합세했다.
연의: 연의 1회 — 연의 1회가 장사 화공과 조조의 합류를 극화한다.
출전: 後漢書 卷71 「嵩乃約勑軍士皆束苣乘城,使銳士閒出圍外,縱火大呼」 / 後漢書 卷71 「會帝遣騎都尉曹操將兵適至」
광종에서 장량을 기습해 격파하고, 하곡양에서 장보를 베어 하북 황건을 평정한다.
정사 후한서 황보숭전: 광종에서 장각의 아우 장량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자 군영을 닫고 쉬며 틈을 엿봤다. 닭이 울 때 기습하여 장량을 베었다. 장각은 이미 병으로 죽어 관을 쪼개 사체를 벴다. 이어 하곡양에서 장보를 베고 십여 만 명을 죽여 경관을 쌓았다.
연의: 연의 2회 — 연의 2회는 노식의 낙마 후 황보숭·주준이 이어받아 장각 일당을 격파하는 흐름이다.
출전: 後漢書 卷71 「嵩與角弟梁戰於廣宗」 / 後漢書 卷71 「嵩復與鉅鹿太守馮翊郭典攻角弟寶於下曲陽,又斬之」
진창에서 왕국이 80여 일 포위하는 동안 동탁의 속공 주장을 물리치고 지켜본 뒤, 적이 지쳐 물러나자 추격해 크게 이긴다.
정사 후한서 황보숭전: 중평 5년 양주 적 왕국이 진창을 포위하자 황보숭은 좌장군으로, 동탁은 전장군으로 각 2만을 거느리고 막았다. 동탁은 빨리 구하자 했으나 황보숭은 듣지 않았다. 80여 일이 지나 적이 지쳐 물러나자 황보숭이 추격해 만여 명을 베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後漢書 卷71 「王國圍陳倉,自冬迄春,八十餘日,城堅守固,竟不能拔」
동탁이 성문교위로 소환해 죽이려 했으나 아들 견수가 동탁에게 사정해 풀려난다.
정사 후한서 황보숭전: 동탁은 집권하자 초평 원년 황보숭을 성문교위로 불러 죽이려 했다. 아들 견수가 동탁에게 찾아가 눈물로 탄원해 풀려났고 의랑·어사중승에 올랐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後漢書 卷71 「及後秉政,初平元年,乃徵嵩為城門校尉,因欲殺之」 / 後漢書 卷71 「使免嵩囚,復拜嵩議郎,遷御史中丞」
동탁이 죽은 뒤 정서장군에 올랐다가 거기장군이 된다.
정사 후한서 황보숭전: 동탁이 죽자 황보숭은 정서장군이 되었고 이어 거기장군이 되었다. 그해 가을에는 태위가 되었으나 유성(流星)이 나타나 면직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後漢書 卷71 「及卓被誅,以嵩為征西將軍,又遷車騎將軍」
정사 후한서 주준전: 남양 황건 장만성이 군수를 죽이고 완에 주둔했고, 뒤를 이은 조홍이 완성에 십여 만으로 웅거했다. 주준이 형주자사 서구·진힐과 합쳐 1만 8천으로 6월부터 8월까지 포위했으나 함락하지 못했다. 토산을 쌓아 성안을 내려다보고 서남을 북으로 치며 동북으로 정예를 올려 성을 넘었다. 연의 2회는 한충이 성을 지키다 항복을 거절하고 유비·관우·장비가 주준을 돕는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2회
정사 후한서 황보숭전: 황보숭이 장각의 아우 장량과 광종에서 싸웠다. 첫날은 장량군이 정예여서 이기지 못했고, 이튿날 영문을 닫고 쉬며 적이 느슨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새벽닭이 울 때 급습해 대파했다. 장각은 이미 병으로 죽어 있었다. 연의 1회는 노식이 장각과 광종에서 대치하다 황문 좌풍의 참소로 압송되는 것으로, 2회는 황보숭·조조가 장량을 곡양에서 치는 것으로 달리 그린다.
연의: 연의 1~2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91 | 장사에서 소수로 황건 파재의 대군을 불로 깨고, 광종에서 장량을, 하곡양에서 장보를 쳐 하북 황건을 거의 평정했다(후한서 황보숭전). |
| 무력 | 76 | 직접 싸운 서술은 적다. 지휘관으로 크게 부각된다(후한서 황보숭전). |
| 지력 | 88 | 장사에서 밤에 불을 놓아 포위를 풀었고 진창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며 왕국이 지치기를 기다렸다 쳐서 이겼다(후한서 황보숭전). |
| 정치 | 75 | 기주 1년 조세 면제를 청해 허락받았다. 백성이 '황보 덕분에 다시 살게 되었다'고 노래했다(후한서 황보숭전). |
| 매력 | 83 | 병사들과 같은 잠자리·밥을 하며 뇌물을 받은 관리에게는 돈을 줘 부끄럽게 했다. 염충이 천하를 노리자 해도 거절했다(후한서 황보숭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황보숭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