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50년경(추정) — 생년 불명(150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08년 — 사망 연도 불명 — 건안 13년(208) 정월 면직된 뒤 졸(자치통감 권65·위서 두기전 주). 208년으로 둠. 계산용 가정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3년 | 장안 | 사공·녹상서사 | 기록 |
| 194년 | 장안 | 사도·녹상서사 | 기록 |
| 195년 | 장안 | 사도 — 이각의 황백성 천도 반대 | 기록 |
| 196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197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198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199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200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201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202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203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204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205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206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207년 | 허창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208년 | 허창 | 사도 → 면직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0~192년 | 후한 조정 | 태상 | 불명 |
| 193년 | 후한 조정 | 사공·녹상서사 | 기록 |
| 194년 | 후한 조정 | 사도·녹상서사 | 기록 |
| 195년 | 후한 조정 | 사도 — 이각의 황백성 천도 반대 | 기록 |
| 196~207년 | 후한 조정 | 사도(허로 천도) | 추정 |
| 208년 | 후한 조정 | 사도 → 면직 | 기록 |
양표가 면직되자 태상 조온이 사공·녹상서사가 된다. 그해 12월 조온도 면직되고 장희가 후임이 된다.
정사 자치통감 권60: 10월 신축 경사에 지진이 났고 사공 양표가 면직되었다. 병오 태상 조온을 사공·녹상서사로 삼았다. 12월 사공 조온이 면직되고 위위 장희가 사공이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資治通鑑 卷060 본 「冬十月辛丑京師地震有星孛於天市司空楊彪免丙午以太常趙溫為司空錄尚書事」
이각이 헌제를 황백성으로 옮기려 하자 사도 조온이 이각에게 '공이 동탁을 위해 복수한다 하나 실은 왕성을 도륙했다, 화해하라'는 서신을 보내 이각이 죽이려 하다 종제 이응의 만류로 그만둔다. 연도는 이각·곽사의 장안 대치기(195)로 둠.
정사 후한서 동탁전: 이각이 헌제를 지양 황백성으로 옮기려 하자 군신이 두려워했는데 사도 조온이 깊이 타일러 그만두게 했다. 위서 동탁전·자치통감 권61: 조온이 이각에게 서신을 보내 '공은 동탁의 복수를 앞세우나 실은 왕성을 도륙하고 대신을 살해했다. 화해하는 것이 낫다'고 하자 이각이 노해 죽이려 했으나 조온의 옛 연(掾)인 종제 이응이 간해 며칠 만에 멈췄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後漢書 卷72 본 「君臣惶懼司徒趙溫深解譬之乃止」
사도 조온이 조조의 아들 조비를 사도부에 불렀다가 조조가 '신의 자제를 불러 선거가 실정과 다르다'고 상표해 책문으로 면직된다. 건안 13년 정월.
정사 자치통감 권65: 건안 13년 봄 정월 사도 조온이 조조의 아들 비를 불렀다. 조조가 상표해 '조온이 신의 자제를 불렀으니 선거가 실정에 맞지 않다'고 하여 책문으로 면직되었다. 위서 문제기 주 헌제기거주: 시중 수광록훈 극려가 부절과 책을 받들고 조온을 면직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資治通鑑 卷065 본 「春正月司徒趙溫辟曹操子丕操表溫辟臣子弟選舉故不以實策免之」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군 지휘 기록 없음.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 없음. |
| 지력 | 53 | 이각의 황백성 천도 계획을 서신과 간언으로 막았다(후한서 동탁전·자치통감 권61). |
| 정치 | 68 | 태상에서 사공·사도를 역임했다(자치통감 권60·61). |
| 매력 | 62 | 헌제의 동귀 길에 이각 일당에게 가로막혔으나 가후가 만류해 살았다(자치통감 권61).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온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