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張旣)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23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사망 223년 — 황초 4년 졸(223)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11년동관경조윤기록
215년장안옹주자사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2~210년위신풍령불명
211년위경조윤기록
212~214년위경조윤불명
215년위옹주자사기록
216~220년위옹주자사불명
221~223년위양주자사불명

나온 사건·전투

202년 · 신풍령

원상이 보낸 곽원과 고간이 평양을 칠 때 사예교위 종요의 사자로 마등 등을 설득해 곽원을 베는 데 호응하게 한다.

정사 장기전: 원상이 곽원·고간·흉노선우를 보내 평양을 치고 서쪽으로 관중 제장과 연합을 꾀하자 사예교위 종요가 장기를 보내 마등 등을 설득했다. 장기가 이해를 말하자 마등 등이 따랐고 마등은 아들 마초가 1만여 병으로 종요와 함께 고간·곽원을 크게 깨고 곽원의 목을 베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건안 초).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旣為言利害,騰等從之」

211년 · 경조윤

조조가 마초를 화음에서 깨고 관우를 평정할 때 따라가 경조윤이 되어 유민을 불러 모으고 현읍을 다시 세운다.

정사 장기전: 조조가 형주 정벌에 나서려 할 때 마등 등이 관중에 분거해 있어 장기를 보내 부곡을 놓고 오게 설득했다. 마등이 내켜 하지 않자 장기가 현마다 저축을 서둘러 두고 이천석이 교외에서 맞게 해 마등이 어쩔 수 없이 동쪽으로 출발했다. 마초가 반란하자 조조를 따라 화음에서 마초를 깨고 서쪽 관우를 평정했고, 경조윤이 되어 유민을 불러 모으고 현읍을 다시 세웠다. 연도는 건안 16년(211).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동관 전투(조조 대 마초·한수)

출전: 三國志 卷15 「旣從太祖破超於華陰,西定關右」

215년 · 옹주자사

조조의 장로 정벌에 따라가 산관에서 들어가 반란한 저를 쳐 보리로 군량을 대고, 장로가 항복하자 한중 백성 수만 호를 장안과 삼보로 이주시키자고 건의한다.

정사 장기전: 위국이 세워지자 상서가 되고 옹주자사로 나갔다. 조조가 「그대의 본주로 돌려보내니 비단옷 입고 낮에 걷는 격」이라 했다. 조조의 장로 정벌에 따라가 산관에서 들어가 반란한 저를 토벌해 보리를 거두어 군량에 댔고, 장로가 항복하자 한중 백성 수만 호를 뽑아 장안과 삼보를 채우자고 건의했다. 이어 조홍과 하변에서 오란을 깼고 하후연과 송건을 토벌했다. 연도는 건안 20년(215).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魯降,旣說太祖拔漢中民數萬戶以實長安及三輔」

219년 · 옹주자사

조조가 한중을 포기할 때 유비가 무도 저족을 취해 관중을 압박할까 염려하자 저족 5만여 락을 북쪽으로 옮겨 부풍·천수 경계에 살게 한다.

정사 장기전: 조조가 한중 수비를 거두며 유비가 북쪽 무도 저족을 취해 관중을 압박할까 두려워하자 장기가 먼저 온 자를 후하게 상주면 뒤에 오는 자도 따르리라 하여 따랐다. 조조가 한중에서 군을 빼내고 장기에게 무도로 가게 해 저 5만여 락을 부풍·천수 경계로 옮겼다. 연도는 건안 24년(219).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徙氐五萬餘落出居扶風、天水界」

221년 · 양주자사 · 대승

황초 초 양주 반란에 황제가 「장기가 아니면 안정시킬 사람이 없다」며 양주자사를 맡기자 황하를 건너 무위에 먼저 들어가 호를 속이고 현미에서 복병으로 크게 깨 하서를 평정한다.

정사 장기전: 문제가 왕위에 올라 양주를 처음 두었는데 장액 장진 등 군이 반란하고 노수호 이건기첩·치원다 등이 반란해 하서가 크게 소란했다. 황제가 「장기가 아니면 안정시킬 자가 없다」며 양주자사를 맡겼다. 금성에서 황하를 건너려 할 때 장수들이 병이 적고 길이 험하다 했으나 장기는 「정형 같은 험지도 아니고 오랑캐는 오합지졸」이라며 건넜고 선음구로 간다고 속이고 차차로 몰래 가 무위에 이르렀다. 현미에서 호기 수천이 대풍을 틈타 불을 지르려 하자 밤에 정병 3천을 숨겨 두고 성공영이 천여 기로 도전하다 거짓으로 물러나게 해 호가 쫓으면 복병이 뒤를 끊어 크게 깨뜨려 만 단위로 베고 사로잡았다. 서향후로 옮겨졌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乃潛由且次出至武威」

223년 · 양주자사

양주·옹주 10여 년의 정치로 이름났고 황초 4년 졸한다.

정사 장기전: 두 주를 다스린 지 10여 년에 정혜가 널리 알려졌다. 황초 4년 졸했고 조서로 어린 아들 장옹귀에게 관내후를 주었다. 명제가 즉위하자 시호 숙후를 추증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5 「能容民畜衆,使羣羌歸土」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9황초 연간 군 7천 기를 거느린 선우를 가로질러 무위에 먼저 들어가 호를 속이고 현미에서 복병으로 크게 깨 하서를 영구히 안정시켰다(장기전).
무력평가 불가무력으로 맞붙은 기록은 없다.
지력78황제가 「장기가 아니면 양주를 안정시킬 사람이 없다」고 했고 조조에게 한중 백성을 이주시키는 대책을 올렸다(장기전).
정치79옹주·양주 10여 년 정치와 은혜로 이름났다(장기전).
매력60그가 부르거나 천거한 방연·양부·호준·방육 등이 모두 이름난 지위에 올랐다(장기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기의 이동 경로

위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