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엄(趙儼)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171년사망 245년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171년 — 「建安二年 年二十七」(197)에서 역산(조엄전)

사망 245년 — 정시 4년(243) 사공이 된 뒤 사망. 정확한 연도는 본문에 없고 245년은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시호 목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19년번성관중호군→의랑·참인군사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6년기타·재야(영천 양적 출신, 형주로 피난)불명
197~199년위낭릉장불명
200~208년위사공연속주부불명
209~216년위장릉태수→도독호군→부풍태수·관중호군불명
217~218년위관중호군→의랑·참인군사불명
219년위관중호군→의랑·참인군사기록
220~225년위시중·부마도위·하동태수·전농중랑장→군사불명
226~238년위도지중랑장→상서·감형주제군사→감예주제군사불명
239~245년위대사농→감옹량제군사→정서장군→표기장군→사공불명

나온 사건·전투

197년 · 낭릉장

조조가 헌제를 맞이해 허에 도읍하자 늙은이와 어린이를 이끌고 조조에게 귀순해 낭릉장이 된다.

정사 조엄전: 조조가 헌제를 맞이해 허에 도읍을 정하자 조엄이 번흠에게 "조진동은 시대의 명을 받은 사람"이라 하고 건안 2년 27세로 노약을 이끌고 조조에게 갔다. 조조가 낭릉장으로 삼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본 「遂扶持老弱詣太祖太祖以儼爲朗陵長」

200년 · 사공연속주부

원소가 남침해 군들이 흔들릴 때 양안군에 거둔 면견을 돌려주도록 순욱에게 청해 군내가 안정된다.

정사 조엄전: 원소가 예주 여러 군을 꾀어 대부분 따랐으나 양안군만 움직이지 않았는데 도위 이통이 호조를 급히 거두었다. 조엄이 순욱에게 거둔 면견을 모두 돌려주자고 청했고 순욱이 조조에게 보고해 군에 문서가 내려가 모두 돌려주자 군내가 안정되었다. 연도는 관도 대치기(200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본 「彧報曰輒白曹公公文下郡綿絹悉以還民」

218년 · 관중호군→의랑·참인군사 · 수습

한중을 구원하러 가던 1천200 병사가 반란하자 추격해 달래 반란 가담 800여 명을 가려내고 주모자만 벌하고 2만여 구를 동쪽으로 옮긴다.

정사 조엄전: 한중에 1,200 병사를 보내라는 조서가 있었고 은서가 호송했다. 병사가 반란을 일으키자 조엄이 자신을 따르던 보기 150명을 달래며 앞으로 나아가 반란 병영의 간계를 꾸민 800여 명을 가려내고 주모자만 다스렸다. 이어 새 병사 천 명만 남기고 나머지를 동쪽으로 보내 모두 2만여 구를 온전히 옮겼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한중 전투기(218년경)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본 「前到諸營各召料簡諸姦結叛者八百餘人散在原野惟取其造謀魁率治之餘一不問」

219년 · 관중호군→의랑·참인군사 · 포위 해제 조력

관우가 조인을 번성에서 포위하자 서황과 함께 가서 지하도와 서신으로 조인과 연락하라고 하고 관우가 물러난 뒤 추격을 말린다.

정사 조엄전: 관우가 번에서 조인을 에워싸자 조엄이 의랑으로 조인군 일에 참여해 남쪽으로 가 서황과 함께 앞섰다. 장수들이 서황을 재촉했으나 조엄이 "전군을 바싹 대 적을 압박하고 첩자를 보내 조인과 연락하자"고 했고, 지하도와 화살 서신을 쓰고 북군이 이르러 크게 싸웠다. 관우가 물러난 뒤 조인이 추격을 논하자 손권의 속셈을 들어 말려 조조의 뜻과 맞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본 「今賊圍素固水潦猶盛」

243년 · 대사농→감옹량제군사→정서장군→표기장군→사공

정시 4년 늙고 병들어 돌아오기를 청해 표기장군을 거쳐 사공이 된다.

정사 조엄전: 제왕이 즉위하자 조엄이 옹·량 제군사를 감독하고 정서장군이 되어 옹·량을 도독했다. 정시 4년 노병으로 돌아가길 청해 표기장군이 되었다가 사공으로 옮겼고 죽자 목후라 시호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3 본 「老疾求還徵爲驃騎將軍遷司空」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72관중 호군으로 반란 병사 800여 명을 가려 달래 돌려보내고 2만여 구를 동쪽으로 옮겼다(조엄전).
무력50서황과 함께 번성에 가서 관우 포위 해결책을 내 조인을 구했다(조엄전).
지력79서황을 독려하는 대신 지하도와 서신으로 조인과 연락하라고 제안해 협공으로 이어졌다(조엄전).
정치78양안군의 면견 징수를 풀도록 순욱에게 청해 군내를 안정시켰다(조엄전).
매력70"신비·진군·두습·조"로 이름을 나란히 했다(조엄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엄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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