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207년 — 건안 12년(207), 조조의 오환 원정 중 유성에 이르기 전에 죽음(장수전: 從征烏丸於柳城,未至,薨). 시호 정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2년 | 홍농 | 건충장군·선위후(장제를 따라 홍농 등) | 추정 |
| 193년 | 홍농 | 건충장군·선위후(장제를 따라 홍농 등) | 추정 |
| 194년 | 홍농 | 건충장군·선위후(장제를 따라 홍농 등) | 추정 |
| 195년 | 홍농 | 건충장군·선위후(장제를 따라 홍농 등) | 추정 |
| 196년 | 완 | (장제 죽은 뒤 무리를 이어 완에 주둔) | 추정 |
| 197년 | 완 | 건충장군(완에서 조조 습격) | 기록 |
| 198년 | 양 | (양으로 돌아가 조조의 연이은 공격을 막음) | 기록 |
| 199년 | 허창 | 양무장군(가후의 계책으로 조조에 항복) | 기록 |
| 200년 | 관도 | 파강장군(관도에서 공을 세움) | 기록 |
| 201년 | 관도 | 파강장군(관도에서 공을 세움) | 기록 |
| 202년 | 관도 | 파강장군(관도에서 공을 세움) | 기록 |
| 203년 | 관도 | 파강장군(관도에서 공을 세움) | 기록 |
| 204년 | 관도 | 파강장군(관도에서 공을 세움) | 기록 |
| 205년 | 남피 | 파강장군(남피에서 원담 격파에 참가)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1년 | 기타·재야 | (무위 조려현 출신 현리, 연대 불명) | 불명 |
| 192~195년 | 기타·재야 | 건충장군·선위후(장제를 따라 홍농 등) | 추정 |
| 196년 | 기타·재야 | (장제 죽은 뒤 무리를 이어 완에 주둔) | 추정 |
| 197년 | 기타·재야 | 건충장군(완에서 조조 습격) | 기록 |
| 198년 | 기타·재야 | (양으로 돌아가 조조의 연이은 공격을 막음) | 기록 |
| 199년 | 위 | 양무장군(가후의 계책으로 조조에 항복) | 기록 |
| 200~204년 | 위 | 파강장군(관도에서 공을 세움) | 기록 |
| 205년 | 위 | 파강장군(남피에서 원담 격파에 참가) | 기록 |
| 206년 | 위 | 파강장군 | 불명 |
| 207년 | 위 | 파강장군(유성 원정 중 사망) | 불명 |
숙부 장제가 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죽자 그 무리를 이어받아 완에 주둔하고 유표와 합친다.
정사 장수전: 장제가 굶주려 양성을 치다 유시에 맞아 죽었다. 장수가 그 무리를 이어받아 완에 주둔하며 유표와 합했다. 연도는 유표전의 서술 순서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繡領其眾,屯宛,與劉表合」
조조가 완에 이르러 항복을 받으나, 조조가 장제의 아내를 취하자 원한을 품고 기습해 조조의 두 아들을 전사시킨다.
정사 장수전: 조조가 남정해 육수에 이르자 장수가 항복했다. 조조가 장제의 아내를 맞이해 장수가 분노했고, 조조가 장수를 죽이려 한다는 소문이 나자 장수가 기습했다. 조조 군이 패하고 조조의 두 아들이 죽었다. 장수는 양으로 돌아가 지켰다.
연의: 연의 16회 — 연의 16회가 완성 전투를 전위의 죽음, 조앙의 전사 등으로 극화한다.
관련: 완성 전투(장수)
출전: 三國志 卷08 「太祖南征,軍淯水,繡等舉眾降」 / 三國志 卷08 「計漏,繡掩襲太祖。太祖軍敗,二子沒」
관도에서 조조와 원소가 맞설 때 가후의 계책을 따라 다시 조조에게 항복하고 양무장군에 임명된다.
정사 장수전: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와 맞설 때 장수가 가후의 계책을 따라 다시 무리를 이끌고 항복했다. 조조가 장수의 손을 잡고 연회를 열고 아들 균의 아내로 장수의 딸을 삼으며 양무장군을 주었다. 연도는 자치통감 건안 4년 서술에 맞춘 것.
연의: 연의 23회 — 연의 23회가 가후의 권유와 장수의 재투항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8 「太祖拒袁紹於官渡,繡從賈詡計,復以眾降」 / 三國志 卷08 「拜揚武將軍」
남피에서 원담을 깨는 데 참가해 식읍이 늘어 모두 2천 호가 된다.
정사 장수전: 관도에서 힘껏 싸워 파강장군이 되었고, 남피에서 원담을 깰 때 종군해 식읍이 모두 2천 호가 되었다. 당시 장수들의 식읍이 천 호가 안 되는 상황에서 특별히 많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從破袁譚於南皮,復增邑凡二千戶」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4 | 숙부 장제의 군을 이어 완에 주둔하며 유표와 연합했고, 조조의 정벌을 한 번 격파했으나 이어 몇 해를 버텨도 끝내 항복했다(장수전). |
| 무력 | 80 | 한 현에서 현리로서 국승을 암살해 군 안에서 의롭게 여겼다(장수전). 조조 군을 습격해 조조의 두 아들을 전사시켰다(장수전). |
| 지력 | 67 | 가후의 계책을 따라 관도 때 다시 조조에게 항복했다(장수전: 繡從賈詡計). |
| 정치 | 50 | 정사에는 정치 기록이 거의 없다. 낮게 둔다(장수전). |
| 매력 | 58 | 조조가 장수의 손을 잡고 연회하며 아들 균의 아내로 장수의 딸을 삼았다(장수전). 관도 이후 식읍이 특별히 많았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수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