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회(鍾會)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225년사망 264년기록 연도 4해

생몰

출생 225년 — 종회전 「會時年四十」(264년 졸)에서 역산

사망 264년 — 경원 5년(264) 정월 — 성도에서 병란으로 피살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55년허창비서랑→상서중서시랑기록
257년수춘황문시랑·동무정후기록
263년한중진서장군(도독 관중)기록
264년성도사도·(촉 점령)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25~254년위(영천 장사 출신·종요의 막내)불명
255년위비서랑→상서중서시랑기록
256년위황문시랑·동무정후불명
257년위황문시랑·동무정후기록
258년위황문시랑·동무정후불명
259~262년위태복(고사)→낭중·대장군부 기실 관장→사예교위불명
263년위진서장군(도독 관중)기록
264년위사도·(촉 점령)기록

나온 사건·전투

255년 · 비서랑→상서중서시랑

관구검의 반란 때 사마사를 따라 동정하고, 사마사 사후 허창에서 사마소를 보좌한다.

정사 종회전: 관구검이 난을 일으키자 대장군 사마경왕이 동정했고 종회가 따라 기밀을 맡았다. 경왕이 허창에서 죽자 문왕이 6군을 총괄했고 종회가 장막에서 모의했으며 부하에게 낙수 남쪽에 주둔하도록 건의했다.

연의: 연의 110회

출전: 三國志 卷28 「毌丘儉作亂大將軍司馬景王東征會從典知密事」 / 三國志 卷28 「會謀謨帷幄」

257년 · 황문시랑·동무정후 · 모략

제갈탄이 소환에 불응할 것을 미리 알리고, 수춘 포위 중 위서로 오의 구원군을 항복시킨다.

정사 종회전: 감로 2년 제갈탄을 사공으로 부를 때 종회는 반드시 불응하리라 사마소에 알렸고, 수춘 포위 때 전역·전서 등 오의 구원 장수들에게 전휘·전의 명의의 위서를 보내 성안 장수들을 두렵게 해 동문을 열고 항복하게 했다. "수춘이 깨진 데 종회의 계책이 많았다"는 평으로 당시 사람들이 자방이라 불렀다.

연의: 연의 110회

출전: 三國志 卷28 「壽春之破會謀居多親待日隆時人謂之子房」 / 三國志 卷28 「懌等恐懼遂將所領開東城門出降」

263년 · 진서장군(도독 관중)

경원 4년 가을 10여 만을 이끌고 사곡·낙곡으로 진군해 한중에 이르고 제갈량 묘에 제사한다.

정사 종회전: 경원 4년 가을 종회는 10여 만 병력을 이끌고 사곡·낙곡으로 들어갔고 길이 무너져 허저의 아들 허의를 베었다. 촉군은 한성·낙성으로 물러나 지켰고 종회는 한성·낙성을 둘러싼 채 양안구로 나가 제갈량 묘에 사람을 보내 제사 지냈다.

연의: 연의 116회

출전: 三國志 卷28 「會統十餘萬眾分從斜谷駱谷入」 / 三國志 卷28 「遣人祭諸葛亮之墓」

263년 · 진서장군(도독 관중)

검각에서 강유군을 막지 못하고 철수하며 등애를 모함하고 제갈서의 군을 병합한다.

정사 종회전: 종회는 제갈서가 겁이 많아 진군하지 않는다고 몰래 고해 함거로 소환하고 군을 모두 자신에게 속하게 했으며, 검각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해 물러났고 촉군이 험한 곳에서 버텼다.

연의: 연의 116회

출전: 三國志 卷28 「會欲專軍勢密白緒畏懦不進檻車徵還」 / 三國志 卷28 「進攻劍閣不克引退」

264년 · 사도·(촉 점령) · 사망

등애를 함거에 가두고 군을 장악한 뒤 반란을 꾀하다 호열 등의 병란으로 강유와 함께 죽는다.

정사 종회전: 종회는 등애의 반상을 밀고해 함거로 징소했고, 등애가 잡히자 대군을 독통하며 공명이 천하를 덮는다 여겨 모반했다. 5년 정월 18일 호열의 군이 성으로 몰려오자 강유와 싸웠으나 강유가 베이고 종회도 나이 40에 죽었다.

연의: 연의 119회

출전: 三國志 卷28 「自謂功名蓋世不可復為人下加猛將銳卒皆在己手遂謀反」 / 三國志 卷28 「會時年四十將士死者數百人」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70촉 정벌에서 10여 만을 이끌고 한중을 점령했으나 검각에서 막히고 이후 등애를 모함·체포하고 모반을 꾀하다 살해됐다(종회전).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은 없다.
지력96제갈탄의 반란을 미리 예측하고, 수춘 포위전에서 오의 구원 장수들을 위장 서신으로 무너뜨렸다(종회전).
정치58사마소의 참모로 정무·기밀을 맡았고 반란 진압·촉 정벌 계획을 논의했다(종회전).
매력705세에 장제가 비범하다 평했고 청년기에 학문·명리로 이름이 났다(종회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종회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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