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231년 — 영안 원년(258) 죽을 때 28세로 역산(정사 본문에 나이는 없음, 손준과 같은 고조 계열의 손자뻘, 통설 값)
사망 258년 — 영안 원년 손휴가 정봉·장포와 납회에서 죽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56년 | 건업 | 시중·무위장군(독중외제군사) | 기록 |
| 258년 | 건업 | 대장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31~255년 | 기타·재야 | (손정의 증손, 손준의 종제) | 불명 |
| 256년 | 오 | 시중·무위장군(독중외제군사) | 기록 |
| 257년 | 오 | 대장군·영녕후 | 불명 |
| 258년 | 오 | 대장군 | 기록 |
손준이 죽자 정사를 이어받고 여거가 등윤을 승상으로 천거하자 등윤을 대사마로 무창에 보내고 여거와 등윤을 모두 쳐서 없앤다.
정사 손침전: 손준이 죽자 시중·무위장군으로 중외제군사를 이어받아 조정 일을 대신 알았다. 여거가 놀라 여러 독장과 연명으로 등윤을 승상으로 천거하자 손침은 등윤을 대사마로 삼아 무창에 보내고, 여거가 군을 돌려 폐위하려 하자 사촌 손려에게 강도에서 여거를 맞게 하고 문흠·유찬·당자 등에게 여거를 치게 했다. 여거는 자살하고 등윤은 삼족이 멸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4 「遣從兄慮將兵逆據於江都」
위 제갈탄이 수춘에서 투항하자 구원군을 보냈으나 패하고 주이를 환리에서 베어 군의 원성을 산다.
정사 손침전: 위 제갈탄이 수춘에서 반란해 투항을 청하자 문흠·당자·전단·전역 등 3만이 구원에 갔으나 위군이 안팎으로 포위했다. 손침은 대병을 일으켜 환리에 주둔하고 주이·정봉·여비 등 5만으로 쳤으나 주이는 위 주태에게 양연에서 패해 물러났고 뒤에 위 호열이 기습해 도륙(都陸)의 군량이 불탔다. 손침은 병 3만을 주고 사수하라 했으나 주이가 따르지 않자 환리에서 주이를 베었다. 제갈탄은 패해 성이 함락되고 손침은 구원에 실패하고 명장을 베어 모두의 원성을 샀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4 「綝斬之於鑊裡」
손량을 폐위하고 손휴를 세운 뒤 손휴와 불화하다 정봉·장포에게 납회에서 죽는다.
정사 손침전: 손량이 친정에 나서자 손침이 두려워 궁을 아우들로 채워 지키게 했다. 손량이 공주 노반·태상 전상·장군 유승 등과 손침 제거를 꾀하자 손침의 종자매였던 손량의 비가 이를 알렸고, 손침이 밤에 전상을 습격하고 유승을 죽인 뒤 궁을 포위했다. 손량의 죄를 알리며 폐위하고 낭야왕 손휴를 맞았으며 상서 환이가 서명하지 않자 죽였다. 이후 손휴와 틈이 벌어졌고 정봉전은 손휴·장포의 모의와 정봉의 납회 계책으로 손침이 죽은 것으로 적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4 「以亮罪狀班告遠近」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42 | 위 제갈탄 구원군의 패전에서 주이를 환리에서 베어 군의 원성이 컸다(손침전). |
| 무력 | 50 | 무력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 |
| 지력 | 50 | 손량의 폐위, 손휴 옹립까지 정권을 장악했다(손침전). |
| 정치 | 50 | 대신들을 죽이거나 쫓아내고 백성의 사당과 불교 사찰을 훼손해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손침전). |
| 매력 | 50 | 손량에게 몰리자 야간에 군을 몰아 궁을 포위했고 손휴가 즉위한 뒤 정봉 등에게 납회에서 죽었다(손침전·정봉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손침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