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197년 — 정사에 몰년이 적혀 있지 않다(향년 42). 손책이 예장에서 병사한 유요의 장례를 치른 것은 199년 서벌 때이므로 그 이전. 197은 자리값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4년 | 후한 조정 | 양주자사 | 불명 |
| 195~197년 | 후한 조정 | 양주목·진무장군 | 불명 |
양주자사로 임명되나 원술이 수춘에 있어 부임하지 못하고 강을 건너 곡아에 머문다.
정사 유요전: 조서로 양주자사가 되었으나 원술이 회남에 있어 부임하지 못하고 오경·손분의 영접으로 곡아에 머물렀다. 한 조정은 이후 목·진무장군으로 올렸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9 「吳景,孫賁迎置曲阿」
손책이 동쪽으로 건너와 번능·장영이 격파되자 단도로 달아난다.
정사 유요전: 손책이 동으로 건너와 장영·번능 등을 깨자 유요는 단도로 달아났고 이어 강을 거슬러 남쪽 예장을 지키며 팽택에 주둔했다. 연도는 손책의 도강(195)에 맞춘 값.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9 「孫策東渡,破英、能等」
예장에서 착융과 싸우다 패하고 다시 모아 착융을 깬 뒤 병사한다.
정사 유요전: 팽택에 주둔한 뒤 예장에서 착융을 토벌했다가 패하고 다시 속현을 모아 착융을 깼으며, 이윽고 병으로 죽었다. 연도는 본문에 없음.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9 「繇進討融,為融所破」
정사 손책전: 195년 손책이 원술의 허락을 얻어 군 1천여 명과 기병 수십 필, 빈객 수백으로 장강을 건너 역양에 이르렀을 때 무리가 5~6천이 되었다. 곡아에서 유요를 몰아내고 오군의 엄백호 등을 깼으며, 196년 회계로 건너 태수 왕랑을 깨고 강동 여러 군을 평정했다. 연의 15회는 신정령의 태사자와의 일기토, 소패왕 별명을 더한다.
연의: 연의 15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48 | 양주 병력 수만을 거느렸으나 손책에게 패해 예장으로 달아났다(유요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 없음. |
| 지력 | 50 | 손책의 침공 전에 수춘의 원술을 피해 강을 건너 곡아로 갔다(유요전). |
| 정치 | 64 | 양주자사로서 오경·손분을 곡아에 맞았다가 원술이 이용했다 하여 쫓아냈다(유요전). |
| 매력 | 60 | 진수 평: 명예를 갈고닦았으나 어지러운 때에 만 리 땅을 차지한 것은 장점이 아니었다(評).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유요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