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0년경(추정) — 생년 불명(170년경,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35년 — 청룡 2년(234) 이후 사망, 연도 불명. 235년은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22년 | 강릉 | 시중→행군사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9년 | 원소·원씨 | (영천 양적 출신, 형 신평과 함께 원소에게 종사) | 불명 |
| 200~203년 | 원소·원씨 | 원담 막하(연대 불명) | 불명 |
| 204~212년 | 위 | 의랑 | 불명 |
| 213~219년 | 위 | 승상장사 | 불명 |
| 220~221년 | 위 | 시중→행군사 | 불명 |
| 222년 | 위 | 시중→행군사 | 기록 |
| 223~229년 | 위 | 시중→행군사 | 불명 |
| 230~233년 | 위 | 영향후·위위(대 명제) | 불명 |
| 234~235년 | 위 | 대장군군사→위위 | 불명 |
형주를 치려 서평에 머문 조조에게 원담의 뜻을 전하고 원씨 형제의 형세를 논해 업을 치게 한다.
정사 신비전: 원상이 평원의 형 원담을 공격하자 원담이 신비를 조조에게 보내 화평을 구했다. 조조는 형주를 치려고 서평에 머물렀고 신비를 만나 크게 기뻐했으나 며칠 뒤 형주를 먼저 치려 했다. 신비가 원씨가 서로 싸우는 천망의 때라며 업을 쳐야 한다고 설득하자 조조가 따랐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이듬해 업 함락(204)에서 거슬러 203년으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5 본 「天以袁尚與明公明公不取而伐荊州」
상군대장군 조진이 주연을 강릉에서 칠 때 행군사로 따라가 돌아와 광평정후에 봉해진다.
정사 신비전: 상군대장군 조진이 강릉에서 주연을 정벌할 때 신비가 행군사가 되었고 돌아온 뒤 광평정후에 봉해졌다. 강릉 포위는 황초 3년(222).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5 본 「上軍大將軍曹真征朱然于江陵毗行軍師」
문제가 대군으로 오를 치려 하자 때가 아니라고 간하나 문제는 강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정사 신비전: 문제가 크게 군을 일으켜 오를 치려 하자 신비가 오·초의 백성은 다스리기 어렵고 먼저 농사와 병을 기르자고 간했다. 문제는 "자손에게 적을 남기라는 말이냐"고 했고, 그래도 오를 쳐 강에 이르러 돌아왔다. 연도는 황초 5~6년(224~225) 중 하나로 보고 224년으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5 본 「帝竟伐吳至江而還」
제갈량이 위수 남쪽에 나오자 명제가 신비를 대장군 군사로 삼아 사지절 보내 사마의의 출전을 막게 한다.
정사 신비전: 청룡 2년 제갈량이 위남에 나오자 사마의가 자주 싸움을 청했으나 명제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 해 더는 막지 못할까 하여 신비를 대장군 군사로 삼아 사지절하게 했고 육군이 신비의 절도를 따랐다. 제갈량이 죽자 위위로 돌아왔다.
연의: 연의 103회 — 연의 103회는 사마의가 싸움을 청하자 신비가 부절을 들고 군문에 서서 막는 장면으로 적는다.
출전: 三國志 卷25 본 「乃以毗爲大將軍軍師使持節六軍皆肅」
정사 무제기: 업이 함락된 뒤 원담이 감릉·안평·발해·하간을 빼앗자, 조조가 절교 편지를 보내고 진군했다. 원담이 평원을 버리고 남피로 달아났다. 12월 조조가 평원에 들어가 주변 현을 평정했고, 205년 정월 남피를 쳐서 원담을 베고 그 처자를 죽였다. 연의 33회는 한겨울 하천이 얼어 군량선이 움직이지 못하자 백성에게 얼음을 깨게 하는 이야기를 더한다.
연의: 연의 33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1 | 청룡 2년 대장군 군사로 사지절해 제갈량이 위수 남쪽에 나왔을 때 육군이 절도를 따랐다(신비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 기록 없음(신비전). |
| 지력 | 79 | 원담·원상의 형세를 논해 조조에게 원담의 청을 받아 업을 치게 했다(신비전). 조진과 주연 정벌에 행군사로 갔다. |
| 정치 | 78 | 문제의 사가 이주와 오 정벌을 직간했고 명제의 궁궐 증축·북망산 평탄화를 막았다(신비전). |
| 매력 | 70 | 문제 옷자락을 잡고 사가 이주를 간했다는 일화가 있고 유방·손자와 사귀지 않았다(신비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신비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