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
사망 255년 — 정원 2년(255) — 졸. 시호 정후. 전문은 정원 2년 졸로 적음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9년 | 한중 | 정서장군 하후연 사마 | 기록 |
| 220년 | 낙양 | 옹주자사 | 기록 |
| 221년 | 장안 | 옹주자사 | 추정 |
| 222년 | 장안 | 옹주자사 | 추정 |
| 223년 | 장안 | 옹주자사 | 추정 |
| 224년 | 장안 | 옹주자사 | 추정 |
| 225년 | 장안 | 옹주자사 | 추정 |
| 226년 | 장안 | 옹주자사 | 추정 |
| 227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28년 | 가정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기록 |
| 229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30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31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32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33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34년 | 북원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35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36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37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38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39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40년 | 장안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47년 | 적도 | 좌장군→전장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207년 | 후한 조정 | (태원 양곡 출신) | 불명 |
| 208~214년 | 위 | 효렴→평원부승 | 불명 |
| 215~218년 | 위 | 문하적조→승상병조의령사 | 불명 |
| 219년 | 위 | 정서장군 하후연 사마 | 기록 |
| 220년 | 위 | 옹주자사 | 기록 |
| 221~226년 | 위 | 옹주자사 | 추정 |
| 227년 | 위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28년 | 위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기록 |
| 229~240년 | 위 | 옹주자사·건위장군→양무장군 | 추정 |
| 241~246년 | 위 | 좌장군→전장군 | 불명 |
| 247년 | 위 | 좌장군→전장군 | 기록 |
| 248년 | 위 | 좌장군→전장군 | 불명 |
| 249~254년 | 위 | 정서장군→거기장군·의동삼사 | 불명 |
| 255년 | 위 | 거기장군 | 불명 |
정군산에서 하후연이 죽자 군을 수습해 장합을 군주로 추대하고, 한수 건너려는 유비에 맞서 물에서 멀리 진을 치자고 건의한다.
정사 곽회전: 하후연이 해를 입고 군이 흔들릴 때 곽회가 흩어진 병사를 수습해 탕구장군 장합을 군주로 추대해 영채가 안정되었고, 다음 날 유비가 한수를 건너려 하자 "물에서 멀리 진을 치고 반쯤 건넜을 때 치자"고 해 유비가 의심해 건너지 못했다.
연의: 연의 70회
출전: 三國志 卷26 「推盪寇將軍張郃爲軍主諸營乃定」 / 三國志 卷26 「不如遠水爲陣引而致之半濟而後擊備可破也」
문제 즉위를 하례하러 가다 병으로 늦어 질책당하자 "당우의 세상을 만나 방풍의 주살을 면하리라 알았다"고 답한다.
정사 곽회전: 황초 원년 곽회가 문제 즉위를 하례하러 가다 병을 얻어 늦었고 문제가 방풍의 고사로 꾸짖자 "오제는 먼저 덕으로 이끌었고 하후 때 쇠해 형벌을 썼다. 지금 당우의 세상이라 방풍의 주살을 면하리라 알았다"고 답해 문제가 기뻐하며 옹주자사로 발탁했다.
연의: 연의 93회
출전: 三國志 卷26 「臣聞五帝先教導民以德夏后政衰始用刑辟」 / 三國志 卷26 「帝恱之擢領雍州刺史封射陽亭侯」
제갈량이 기산으로 나오자 장합과 마속을 막는 동안 고상의 열류성 영채를 깨고 이어 포한에서 당제를 격파한다.
정사 곽회전: 태화 2년 제갈량이 기산으로 나오자 마속이 가정에 이르고 고상이 열류성에 주둔했는데, 장합은 마속을 곽회는 고상의 영채를 공격해 모두 깼고 이어 농서의 강 당제를 포한에서 격파해 건위장군이 되었다.
연의: 연의 95회
관련: 가정 전투와 읍참마속
출전: 三國志 卷26 「張郃擊謖淮攻詳營皆破之」 / 三國志 卷26 「又破隴西名羌唐蹏於枹罕」
위수 남쪽 사마의 군 곁에서 제갈량이 북원을 노릴 것이라 예측해 먼저 점거하고, 제갈량의 서쪽 시위를 양수 공격으로 간파한다.
정사 곽회전: 청룡 2년 제갈량이 사곡으로 나와 난갱에서 둔전하자 곽회는 "제갈량이 반드시 북원을 다툴 것"이라 판단해 먼저 점거했고, 며칠 뒤 제갈량이 서쪽으로 대군을 보이자 "서쪽은 시늉이고 양수를 공격할 것"이라 해 그 밤 과연 양수를 공격했으나 대비가 있었다.
연의: 연의 103회
출전: 三國志 卷26 「淮策亮必爭北原宜先據之」 / 三國志 卷26 「其夜果攻陽遂有備不得上」
강유가 위시를 공격하자 먼저 포한을 치자는 중론을 물리치고 강유의 공격 목표를 맞혀 강유를 물러나게 한 뒤 요화를 쳐서 성중산의 성을 깬다.
정사 곽회전: 정시 8년 강족 반란에 촉이 호응하자 곽회는 적도에 이르러 "강유가 반드시 하후패를 칠 것"이라 해 풍중으로 들어가 하후패를 맞았고 강유는 위시에서 도망쳤다. 이어 곽회는 강유를 서쪽으로 유인한 틈에 요화의 성중산 성을 쳤고 강유가 구하러 달려왔으나 모두 곽회의 계산대로였다.
연의: 연의 93회
출전: 三國志 卷26 「淮策維必來攻霸」 / 三國志 卷26 「維果馳還救化皆如淮計」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2 | 옹·량주 도독으로 30여 년 관우를 지키며 강족을 제압하고 촉의 강유·요화를 여러 번 격퇴했다(곽회전). |
| 무력 | 평가 불가 | 직접 무용을 보인 기록은 없다. |
| 지력 | 81 | 강유의 공격 목표를 예측해 요화·강유를 연이어 물리쳤고 제갈량이 북원을 노릴 것도 미리 간파했다(곽회전). |
| 정치 | 68 | 강·호의 항복자를 먼저 친속·인구까지 물어 신명이라 불렸고 군량을 그 지역에서 조달했다(곽회전). |
| 매력 | 72 | 정군산 뒤 장합을 군주로 추대해 군심을 안정시켰다(곽회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곽회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