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75년 — 정사에 몰년이 없다. 마지막 연도 기록(천책 원년 사건)을 채운 자리값(실제로는 교주에서 자살)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66년 | 무창 | 궁하진금중후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58~264년 | 오 | 감농어사 | 불명 |
| 265년 | 오 | 산기중상시→회계태수→대사농 | 불명 |
| 266년 | 오 | 궁하진금중후 | 추정 |
| 267~274년 | 오 | 궁하진금중후 | 불명 |
| 275년 | 오 | (광주로 유배) | 불명 |
손휴 때 감농어사를 지낸다.
정사 누현전: 손휴 때 감농어사였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5 「孫休時為監農御史」
손호가 즉위하자 왕번·곽탁·만욱과 함께 산기중상시가 되었다가 회계태수로 나가고 대사농으로 들어온다.
정사 누현전: 손호가 즉위하자 왕번·곽탁·만욱과 함께 산기중상시가 되었고 회계태수로 나갔다가 대사농으로 들어왔다. 연도는 손호 즉위 직후(264~265)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5 「孫皓即位,與王蕃、郭逴、萬彧俱為散騎中常侍」
금중 경비를 맡을 충직·청렴한 사람을 구하라는 명으로 궁하진금중후가 되어 전중 일을 맡는다.
정사 누현전: 옛 금중의 담당자가 측근을 쓰던 것을 만욱이 가까운 직에는 좋은 사람을 써야 한다 하여 손호가 유사에 충직·청렴한 이를 구하게 했고, 누현이 궁하진금중후로 전중의 일을 맡았다. 구경의 몸으로 칼을 들고 시위하며 법을 따랐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도읍이 무창이던 시기(265~266)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5 「遂用玄為宮下鎮禁中候」
누군가 누현과 하소가 만나 귓속말하며 웃었다고 국정 비방으로 고발해 광주로 보내지고, 뒤에 교지로 옮겨졌다가 죽는다.
정사 누현전: 누군가 누현이 하소와 길에서 만나 귓속말하며 크게 웃어 정사를 비방했다고 무고해 조서로 문책하고 광주로 보냈다. 동관령 화핵이 상소했으나 손호는 누현의 명성을 미워해 아들 누거와 함께 교지로 옮겨 장혁에게 전공을 세우게 하되 몰래 죽이라 했다. 장혁이 죽자 누현은 관 속의 칙서를 보고 자살했다. 연도는 하소 사건(천책 원년, 275).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5 「送付廣州」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지력 | 68 | 손호가 충직하고 청렴한 사람을 구하자 만욱이 천거해 궁하진금중후로 쓰였다(누현전). |
| 정치 | 66 | 궁중 경비를 맡아 칼을 들고 시위하며 몸을 바르게 하고 법을 따랐다(누현전). |
| 매력 | 66 | 대답이 직절해 손호의 뜻을 자주 거스르다 책망이 쌓였다(누현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누현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