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제(유협)(獻帝(劉協))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생년 불명사망 234년기록 연도 46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 본문에 없음).

사망 234년 — 청룡 2년(234) 3월 산양공으로 죽음(명제기: 三月庚寅,山陽公薨).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89년낙양진류왕 → 황제(동탁이 옹립)기록
190년낙양 · 다른 후보: 장안황제(낙양에서 장안으로 끌려감)기록
191년장안황제(장안)기록
192년장안황제(장안)기록
193년장안황제(장안)기록
194년장안황제(장안)기록
195년장안 · 다른 후보: 홍농황제(이각에게 잡혀 있다 장안을 빠져나옴)기록
196년허창 · 다른 후보: 낙양황제(낙양 환궁 후 허로 이동)기록
197년허창황제(허)기록
198년허창황제(허)기록
199년허창황제(허)기록
200년허창황제(허)기록
201년허창황제(허)기록
202년허창황제(허)기록
203년허창황제(허)기록
204년허창황제(허)기록
205년허창황제(허)기록
206년허창황제(허)기록
207년허창황제(허)기록
208년허창황제(허)기록
209년허창황제(허)기록
210년허창황제(허)기록
211년허창황제(허)기록
212년허창황제(허)기록
213년허창황제(허)기록
214년허창황제(허)기록
215년허창황제(허)기록
216년허창황제(허)기록
217년허창황제(허)기록
218년허창황제(허)기록
219년허창황제(허)기록
220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21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22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23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24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25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26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27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28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29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30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31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32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33년산양(山陽)산양공(선양 후)기록
234년산양(山陽)산양공(사망)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88년후한 조정(황자 협, 동태후가 양육)불명
189년동탁진류왕 → 황제(동탁이 옹립)기록
190년동탁황제(낙양에서 장안으로 끌려감)기록
191~194년동탁황제(장안)기록
195년후한 조정황제(이각에게 잡혀 있다 장안을 빠져나옴)기록
196년위황제(낙양 환궁 후 허로 이동)기록
197~219년위황제(허)기록
220~233년위산양공(선양 후)기록
234년위산양공(사망)기록

나온 사건·전투

189년 · 진류왕 → 황제(동탁이 옹립)

소제가 폐위된 뒤 동탁의 손에 의해 진류왕이 황제로 세워진다.

정사 동탁전: 동탁이 소제를 홍농왕으로 폐하고 하태후까지 죽인 뒤 영제의 어린 아들 진류왕을 세우니 곧 헌제다.

연의: 연의 3~4회 — 연의 3~4회가 폐립의 과정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立靈帝少子陳留王,是爲獻帝」

190년 · 황제(낙양에서 장안으로 끌려감)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천자를 장안으로 옮긴다.

정사 동탁전: 초평 원년 2월 천자를 장안으로 옮기고 낙양 궁실을 불태웠다.

연의: 연의 6회 — 연의 6회가 천도를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乃徙天子都長安」

195년 · 황제(이각에게 잡혀 있다 장안을 빠져나옴) · 대패

이각·곽사가 싸우는 중에 이각에게 인질로 잡혀 영채에 갇히고 궁이 불탄다. 이후 양봉 군에 몸을 맡기고 동쪽으로 떠난다.

정사 동탁전: 이각이 천자를 영채에 인질로 삼고 궁전과 성문을 불살랐다. 장제의 중재로 천자가 나올 수 있었고 신풍·패릉 사이에 이르렀다. 천자는 양봉의 진영으로 달아났다.

연의: 연의 13회 — 연의 13회가 이각·곽사의 싸움과 헌제 탈출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傕質天子於營,燒宮殿城門」 / 三國志 卷06 「天子奔奉營,奉擊汜,破之」

195년 · 황제(이각에게 잡혀 있다 장안을 빠져나옴) · 대패

조양에서 이각·곽사에게 크게 패하고 걸어서 황하를 건너 안읍으로 향한다.

정사 동탁전: 이각·곽사가 조양에서 양봉을 쳐 공경 백관을 마구 죽였다. 천자는 섬으로 달아나 황하를 북쪽으로 건너며 보급품을 잃고 걸어서 갔다.

연의: 연의 13회 — 연의 13회가 조양 전투를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天子走陝,北渡河,失輜重,步行」

196년 · 황제(낙양 환궁 후 허로 이동)

양봉·한섬이 황제를 모시고 낙양으로 돌아온다. 궁은 다 타고 백관은 가시덤불 속에 선다.

정사 무제기: 7월 양봉·한섬이 천자를 모시고 낙양으로 돌아왔다. 동탁전: 낙양의 궁실이 불타 없어지고 거리가 황폐해 백관이 가시덤불을 헤치고 담장 사이에 의지했다.

연의: 연의 14회 — 연의 14회가 동귀 장면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1 「秋七月,楊奉、韓暹以天子還洛陽」

196년 · 황제(낙양 환궁 후 허로 이동)

조조가 천자를 허로 맞아 도읍을 옮긴다.

정사 동탁전: 조조가 천자를 맞아 허에 도읍하자 한섬·양봉은 왕법을 따르지 못하고 달아났다. 무제기: 조조가 천자를 맞는 데 장수들이 의심했으나 순욱·정욱이 권했다.

연의: 연의 14회 — 연의 14회가 허도 천도를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太祖乃迎天子都許」

200년 · 황제(허)

동승이 천자의 의대 속 밀조를 받아 조조 암살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처형된다. 연도는 건안 5년으로 추정.

정사 선주전: 동승이 황제의 의대 속 밀조를 받아 조조를 죽이려 했고 유비도 이 모의에 들었다. 동탁전(卷6): 동승은 조조를 1년 남짓 따르다 처형되었다.

연의: 연의 20~21회 — 연의 20~21회가 의대조(衣帶詔) 사건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32 「辭受帝衣帶中密詔,當誅曹公」 / 三國志 卷06 「董承從太祖歲餘,誅」

220년 · 산양공(선양 후)

조비에게 선양하고 산양공이 된다.

정사 문제기: 황초 원년 11월 하내의 산양읍 1만 호로 한제를 산양공으로 봉하고 한나라 정삭을 쓰며 천자의 예로 교제를 지내게 했다. 앞서 10월 장음이 새수를 받들어 선위했다.

연의: 연의 80회 — 연의 80회가 선양 과정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2 「以河內之山陽邑萬戶奉漢帝爲山陽公,行漢正朔,以天子之禮郊祭」 / 三國志 卷02 「使兼御史大夫張音持節奉璽綬禪位」

234년 · 산양공(사망)

산양공으로 죽는다. 명제가 소복으로 곡하고 사자를 보내 장례를 돕는다.

정사 명제기: 청룡 2년 3월 산양공이 죽자 황제가 소복을 입고 애도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3 「三月庚寅,山陽公薨,帝素服發哀」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8이각·곽사의 싸움 가운데 영제의 아들로 황제가 됐으나 스스로 군을 거느린 서술이 없다. 조양에서 보급을 잃고 걸어서 달아났다(동탁전).
무력평가 불가무력 기록이 없다. 기본값에 가깝게 낮게 둔다.
지력56이각에게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양표 등에게 조서를 내려 곽사를 설득하게 했으나 응하지 않은 일이 있다(후한서 주준전). 지력 서술은 적다.
정치50동탁·이각·조조 아래에서 정치를 직접 쥔 서술이 거의 없다(동탁전·무제기).
매력61화친을 위해 신하를 보내거나 낙양에서 신하들이 굶주리는 가운데 상소를 받는 등 신하들과 함께한 서술이 있다(동탁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헌제(유협)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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