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현(夏侯玄)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209년사망 254년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209년 — 「時年四十六」(254년 처형)에서 역산

사망 254년 — 가평 6년(254) 2월 — 동시에서 참수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40년낙양산기상시·중호군추정
244년장안산기상시·중호군추정
254년낙양태상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28년위(미출사)불명
229~234년위산기황문시랑(20세 무렵)불명
235~238년위우림감불명
239년위산기상시·중호군불명
240년위산기상시·중호군추정
241~243년위산기상시·중호군불명
244년위산기상시·중호군추정
245~247년위산기상시·중호군불명
248년위정서장군(옹량 도독)불명
249~252년위대홍려→태상불명
253년위태상불명
254년위태상기록

나온 사건·전투

240년 · 산기상시·중호군

사마의가 인사 문제를 묻자 중정·군현 제도 개혁을 건의한다.

정사 하후상전 附 하후현: 태부 사마의가 시사를 묻자 하후현이 중정 제도 정비, 군수 폐지와 자사 직할, 복제 질박화를 건의했고 사마의는 모두 좋으나 어렵다고 답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9 「官才用人國之柄也」 / 三國志 卷09 「宜省郡守但任刺史」

244년 · 산기상시·중호군

정서장군으로 옹·량주를 도독하며 조상과 낙곡 출병에 참여한다.

정사 하후상전 附 하후현: 얼마 뒤 정서장군·가절·도독옹량주제군사가 되어 조상과 함께 낙곡 출병을 일으켜 당시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다.

연의: 연의 110회

출전: 三國志 卷09 「與曹爽共興駱穀之役時人譏之」

254년 · 태상 · 처형

이풍·장집의 사마사 제거 모의에 연루되어 동시에서 처형된다.

정사 하후상전 附 하후현: 중서령 이풍이 하후현을 대장군으로 삼으려 모의했다가 사마사에게 발각되어 하후현은 정위에 보내졌고 이풍 등과 함께 삼족이 멸해졌다. 동시에서 참수될 때 안색이 변하지 않았고 나이 46세였다.

연의: 연의 109회

출전: 三國志 卷09 「廷尉鍾毓奏豐等謀迫脅至尊擅誅冢宰」 / 三國志 卷09 「玄格量弘濟臨斬東巿顏色不變舉動自若時年四十六」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3정시 연간 서정장군으로 옹량주 제군사를 맡았으나 조상의 낙곡 출병에 참여해 당시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하후상전 附 하후현).
무력평가 불가개인 무용 기록은 없다.
지력85중정·군수 제도를 논해 관료 임용과 복제 개혁을 제안한 장문을 사마의에게 올렸다(하후상전 附 하후현).
정치74군현 제도를 단순화하고 군수를 줄이며 자사 중심으로 하자는 의견을 냈다(하후상전 附 하후현).
매력76젊어서 이름을 알렸고 처형장에서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하후상전 附 하후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하후현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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