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63년 — 정사에 몰년이 적혀 있지 않다(무릉태수로 재임 중 졸). 263은 마지막 연도 기록(촉 멸망 후 무릉)에 맞춘 자리값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42~262년 | 오 | 태자보의도위 | 불명 |
| 263년 | 오 | 평위장군·무릉태수 | 불명 |
적오 5년 낭중에서 태자보의도위가 되고 남해태수로 옮긴다.
정사 종리목전: 적오 5년 낭중에서 태자보의도위로 보임되었고 남해태수로 옮겼다. 이어 승상장사·사직·중서령을 거쳤고 건안·파양·신도 3군 산민의 난에 감군사자로 나가 평정, 진정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遷南海太守」
촉 멸망 후 무릉 5계 오랑캐와 접경한 곳에서 위의 곽순이 이민을 꾀자 3천 병력으로 2천 리를 달려 수괴를 베고 5계를 평정한다.
정사 종리목전: 영안 6년 촉이 위에 병합되자 무릉 5계 이민이 촉과 접경해 반란을 우려, 종리목을 평위장군·무릉태수로 삼았다. 위 곽순이 부릉 백성을 이끌고 적사에 주둔해 이민 읍군을 유혹, 유양현을 공격하자 종리목은 부하 3천으로 밤낮 산길을 2천 리 가 반심을 가진 수괴 100여 명과 그 무리를 베었고 곽순 등이 흩어져 5계가 평정되었다. 이후 공안독·양무장군, 유수독, 전장군·가절·무릉태수.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斬惡民懷異心者魁帥百餘人」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65 | 촉 멸망 직후 무릉 5계 오랑캐와 위가 노리자 3천 병력으로 2천 리를 밤낮으로 달려 수괴 100여 명을 베고 5계를 평정했다(종리목전). |
| 무력 | 64 | 직접 군을 거느려 산길을 타고 진군해 적의 우두머리 100여 명과 그 무리를 베었다(종리목전). |
| 지력 | 70 | 「구원이 없으니 근본이 얕을 때 쳐야 한다. 불을 끄는 일은 빠름이 귀하다」라며 신중론을 물리쳤다(종리목전). |
| 정치 | 77 | 3군의 산민 반란을 감군사자로 토벌해 병역에 충당했다(종리목전). |
| 매력 | 75 | 곡식을 내주려 한 일이 알려지자 백성이 쌀을 도로 보내도 받지 않아 이름이 났다(종리목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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