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5년경(추정) — 생년 불명(17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35년 — 건흥 13년(235), 한가군으로 유배된 뒤 상서로 비방하다 자살(양의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9년 | 성도 | 상서(한중왕 즉위 때 발탁) | 기록 |
| 220년 | 성도 | 상서 | 추정 |
| 221년 | 성도 | 요서 홍농태수(상서령 유파와 불화로 좌천) | 기록 |
| 222년 | 성도 | 요서 홍농태수(상서령 유파와 불화로 좌천) | 기록 |
| 227년 | 한중 | 참군(한중 주둔) | 추정 |
| 228년 | 한중 | 참군(한중 주둔) | 추정 |
| 229년 | 한중 | 참군(한중 주둔) | 추정 |
| 230년 | 한중 | 장사·수군장군 | 기록 |
| 231년 | 한중 | 장사·수군장군 | 기록 |
| 232년 | 한중 | 장사·수군장군 | 기록 |
| 233년 | 한중 | 장사·수군장군 | 기록 |
| 234년 | 오장원 | 장사 — 철군 지휘, 위연 토벌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0~215년 | 후한 조정 | 형주자사 부군 주부 → 관우 공조(연대 불명) | 불명 |
| 216~218년 | 촉한 | 좌장군 병조연(선주가 등용) | 불명 |
| 219년 | 촉한 | 상서(한중왕 즉위 때 발탁) | 기록 |
| 220년 | 촉한 | 상서 | 추정 |
| 221~222년 | 촉한 | 요서 홍농태수(상서령 유파와 불화로 좌천) | 기록 |
| 223~224년 | 촉한 | 요서 홍농태수 | 불명 |
| 225~226년 | 촉한 | 참군·서부사(제갈량 남정 수행) | 불명 |
| 227~229년 | 촉한 | 참군(한중 주둔) | 추정 |
| 230~233년 | 촉한 | 장사·수군장군 | 기록 |
| 234년 | 촉한 | 장사 — 철군 지휘, 위연 토벌 | 기록 |
| 235년 | 촉한 | 서인(폐위) → 한가군 유배 → 자살 | 불명 |
상서령 유파와 불화해 요서 홍농태수로 좌천된다.
정사 양의전: 선주가 제위에 올라 오를 치러 동정할 때 양의가 상서령 유파와 불화해 요서 홍농태수로 좌천됐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0 본 「先主稱尊號東征吳儀與尚書令劉巴不睦左遷遙署弘農太守」
장사가 되어 제갈량의 북벌에서 군사 부서 배정, 군량 계산 등 군무를 도맡는다.
정사 양의전: 건흥 8년 장사로 옮기고 수군장군을 더했다. 제갈량이 출병할 때마다 양의가 분부를 규획하고 군량을 계산했는데 생각이 빨라 곧 끝내, 군융의 절도는 양의에게서 처리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0 본 「八年遷長史加綏軍將軍亮數出軍儀常規畫分部籌度糧穀不稽思慮斯須便了軍戎節度取辦於儀」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자 철군을 지휘하고 위연을 토벌한다. 제갈량이 자신을 후계로 지목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는다.
정사 양의전: 제갈량이 진중에서 죽자 양의가 군을 이끌고 돌아와 위연을 주살했다. 큰 공이라 스스로 제갈량의 뒤를 이어 집정해야 한다고 여겼으나 제갈량의 평소 뜻은 장완에게 있었다. 장완이 상서령·익주자사가 되었고 양의는 중군사로 맡은 부서가 없었다.
연의: 연의 105회
출전: 三國志 卷40 본 「儀既領軍還又誅討延自以為功勳至大宜當代亮秉政」
비의에게 '그때 위로 갔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원망을 터뜨린 말이 고발되어 서인이 되고 한가군에 유배된다. 유배지에서 다시 상서로 비방하다 체포 명령이 내려지자 자살한다.
정사 양의전: 양의가 비의에게 '승상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군을 이끌어 위에 투항했더라면 이렇게 처량했겠는가'라고 했고 비의가 이를 몰래 표로 올렸다. 건흥 13년 양의를 서인으로 하고 한가군으로 옮겼으나 유배지에서 다시 비방 상서를 올려 군에서 체포하려 하자 자살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0 본 「往者丞相亡沒之際吾若舉軍以就魏氏處世寧當落度如此邪」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61 | 제갈량 사후 철군을 지휘해 위연을 토벌했다(양의전). 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돌아왔다. |
| 무력 | 50 | 무용 기록 없음. 군사 업무 분배와 군량 계산을 맡았다(양의전). |
| 지력 | 81 | '군무의 절도는 양의에게서 처리되었다'(양의전). 규획·분부·군량 계산이 빨랐다. |
| 정치 | 79 | 승상부의 일을 맡아 장사로서 분부·군량 업무를 도맡았다(양의전). |
| 매력 | 30 | 성격이 편협해 호의를 얻지 못했고 비의에게 불만을 쏟다 고발당했다(양의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양의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