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융(傅肜)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촉한출생 생년 불명사망 222년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222년 — 장무 2년(222) 6월, 이릉 전투에서 후미를 막다 전사(양희전·육손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21년이릉(선주를 따라 동정)추정
222년이릉별독(이릉에서 후미를 맡다 전사)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220년촉한(의양 출신, 연대 불명)불명
221년촉한(선주를 따라 동정)추정
222년촉한별독(이릉에서 후미를 맡다 전사)기록

나온 사건·전투

222년 · 별독(이릉에서 후미를 맡다 전사) · 대패

이릉 전투에서 별독으로 싸우다, 선주가 퇴군할 때 후미를 막아 병사가 모두 죽도록 싸우고 항복을 거부하며 전사한다.

정사 양희전: 의양의 부융은 선주가 물러날 때 후미를 막아 싸웠고, 병사가 모두 죽은 뒤 오 장수가 항복을 권하자 '오나라 개 같으니 한나라 장군이 항복하는 일이 있느냐'고 꾸짖고 싸우다 죽었다. 육손전: 풍습이 대독, 장남이 전부, 부융 등이 별독이었다.

연의: 연의 84회 — 연의 84회가 부동(傅彤)이 이릉의 후미를 막다 죽는 장면을 극화한다(연의의 표기는 傅彤).

관련: 이릉 전투, 육손의 화공

출전: 三國志 卷45 「吳狗!何有漢將軍降者!」 / 三國志 卷58 「趙融、廖淳、傅肜等各為別督」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1이릉 전투에서 별독으로 선주 퇴군 때 후미를 맡아 병사가 모두 죽도록 싸웠다(양희전).
무력64병사가 다 죽어도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는 서술이 있다(양희전).
지력평가 불가정사 본문에 직접 근거가 적어 중간값(기본값)으로 둔다.
정치평가 불가정사 본문에 직접 근거가 적어 중간값(기본값)으로 둔다.
매력64오 장수가 항복을 권하자 '오나라 개 같으니, 한나라 장군이 항복하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꾸짖고 싸우다 전사해 아들 부첨과 함께 충의로 칭송받았다(양희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부융의 이동 경로

촉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