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60년경(추정) — 생년 불명(160년경 설).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19년 — 건안 24년 12월(양력 220년 1월) 임저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3년 | 평원 | 별부사마 | 추정 |
| 199년 | 하비 | 하비 태수 대행 | 기록 |
| 200년 | 백마 | 편장군 → 한수정후 | 기록 |
| 201년 | 여남 | (유비에게 귀환) | 추정 |
| 202년 | 신야 | (유비 휘하) | 추정 |
| 203년 | 신야 | (유비 휘하) | 추정 |
| 204년 | 신야 | (유비 휘하) | 추정 |
| 205년 | 신야 | (유비 휘하) | 추정 |
| 206년 | 신야 | (유비 휘하) | 추정 |
| 207년 | 신야 | (유비 휘하) | 추정 |
| 208년 | 하구 · 다른 후보: 화용도 | (수군 지휘) | 기록 |
| 209년 | 강릉 | 탕구장군·양양태수 | 추정 |
| 210년 | 강릉 | 탕구장군·양양태수 | 추정 |
| 211년 | 강릉 | 형주 수비 | 기록 |
| 212년 | 강릉 | 형주 수비 | 기록 |
| 213년 | 강릉 | 형주 수비 | 기록 |
| 214년 | 강릉 | 형주 수비 | 기록 |
| 215년 | 익양 | 형주 수비 | 기록 |
| 216년 | 강릉 | 형주 수비 | 추정 |
| 217년 | 강릉 | 형주 수비 | 추정 |
| 218년 | 강릉 | 형주 수비 | 추정 |
| 219년 | 번성 | 전장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2년 | 촉한 | (유비를 따름, 연대 불명) | 불명 |
| 193년 | 촉한 | 별부사마 | 추정 |
| 194~198년 | 촉한 | 별부사마 | 불명 |
| 199년 | 촉한 | 하비 태수 대행 | 기록 |
| 200년 | 위 | 편장군 → 한수정후 | 기록 |
| 201년 | 촉한 | (유비에게 귀환) | 추정 |
| 202~207년 | 촉한 | (유비 휘하) | 추정 |
| 208년 | 촉한 | (수군 지휘) | 기록 |
| 209~210년 | 촉한 | 탕구장군·양양태수 | 추정 |
| 211~215년 | 촉한 | 형주 수비 | 기록 |
| 216~218년 | 촉한 | 형주 수비 | 추정 |
| 219년 | 촉한 | 전장군 | 기록 |
유비를 따라 나선다. 합류한 해는 정사에 적혀 있지 않다.
정사 정사에는 도원결의 기록이 없다. 관우전은 선주(유비)가 관우·장비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은혜가 형제 같았다'고만 적는다.
연의: 연의 1회 — 연의 1회가 복숭아밭 맹세로 극화한 연의 창작 대목이다.
관련: 도원결의
호뢰관 삼영전에 나선다(연의 창작).
정사 정사에 호뢰관 전투는 없다. 정사의 반동탁 전선은 손견의 양인 전투와 조조의 형양 변수 전투 정도다(손견전에 화웅이 나온다).
연의: 연의 5회 — 연의 5회가 극화한 연의 창작 대목이다.
관련: 호뢰관 삼영전
백마에서 안량을 베어 한수정후에 봉해진다.
정사 관우전: 관우가 안량의 휘개를 보고 말을 달려 만군 속에서 찔러 목을 베어 돌아왔다. 조조는 한수정후로 봉했다.
연의: 연의 25~26회 — 연의 25회의 토산 약삼사는 정사에 없다.
관련: 백마 전투, 관우가 안량을 베다 · 백마 전투
철수하는 조조를 화용도에서 막았다는 기록은 정사에 없다(연의 창작).
정사 무제기: 적벽에서 싸워 불리했고 역병이 돌아 관리와 병사 다수가 죽자 군을 물렸다. 배송지 주 ― 山陽公載記: 화용도로 걸어 철수하다 진창에 막혀 약한 병사들이 풀을 지고 길을 메웠고 사람과 말에 밟혀 죽은 자가 많았다.
연의: 연의 50회 —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막았다 놓아줬다는 연의 50회 이야기는 정사에 없다.
관련: 조조의 철수(화용도)
번성을 포위, 수공으로 우금의 칠군을 무너뜨린다.
정사 관우전·우금전: 8월 장마로 한수가 넘쳐 우금 등 7군이 물에 잠겼고 우금은 항복했다.
연의: 연의 74회 — 연의 74회가 같은 싸움을 다룬다.
관련: 번성 전투, 관우의 수공
형주를 잃고 맥성으로 쫓기다 사로잡혀 죽는다.
정사 관우전·오주전: 10월 여몽·육손이 공안·강릉을 빼앗았고 관우는 맥성을 거쳐 장향에서 사로잡혀 임저에서 처형됐다.
연의: 연의 76~77회 — 옥천산 현성(연의 77회)은 연의 창작이다.
관련: 관우의 최후, 맥성에서 임저로
정사 후한서 주준전: 남양 황건 장만성이 군수를 죽이고 완에 주둔했고, 뒤를 이은 조홍이 완성에 십여 만으로 웅거했다. 주준이 형주자사 서구·진힐과 합쳐 1만 8천으로 6월부터 8월까지 포위했으나 함락하지 못했다. 토산을 쌓아 성안을 내려다보고 서남을 북으로 치며 동북으로 정예를 올려 성을 넘었다. 연의 2회는 한충이 성을 지키다 항복을 거절하고 유비·관우·장비가 주준을 돕는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2회
정사 정사에는 호뢰관에서 연합군과 동탁군이 싸운 기록이 없다. 무제기는 원소 등이 산동에서 일어났으나 동탁의 병세가 강해 먼저 진군하는 자가 없었다고 적는다. 화웅을 벤 것은 연의에서 관우(온주참화웅)로 그려지나 정사에서는 손견이 양인에서 화웅을 벤다. 삼영전여포도 정사에 없다.
연의: 연의 5~6회
정사 무제기·원소전: 200년 2월부터 10월까지 이어졌다. 원소는 정병 10만과 기병 1만으로 허도를 치려 했고, 조조는 관도에 군을 모으고 병력이 1만에 못 미쳐 사상자가 열에 두셋이었다. 원소는 높은 망루와 토산에서 영채에 화살을 쏘았고 조조는 발석거(벽력거)로 이를 부수었다. 원소가 땅굴을 파자 조조는 안에 긴 참호를 팠다. 군량이 모자라던 때 허유가 항복해 순우경의 오소 군량 수송을 알리자 조조는 보기 5천으로 밤에 오소를 급습해 순우경 등을 베었고, 장합·고람이 항복하자 원소군이 무너졌다.
연의: 연의 30~31회
정사 선주전: 유표가 죽고 유종이 항복했으나 유비는 형주 백성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갔다. 당양에 이르렀을 때 무리가 10여만, 치중이 수천 량이었고 하루 십여 리를 갔다. 조조가 양양에서 유비가 지나간 것을 알고 정기 5천으로 하루 밤낮에 300여 리를 달려 당양 장판에서 따라잡았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장비·조운 등 수십 기와 달아났다. 장비는 20기로 후미를 맡아 물가 다리를 끊고 맞섰고, 조운은 어린 아들(후주)을 안고 감부인을 지켜 낸다.
연의: 연의 41~42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90 | 번성에서 수공으로 우금의 칠군을 무너뜨렸다(219, 관우전). |
| 무력 | 97 | 백마(200)에서 만군 속에서 안량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관우전). |
| 지력 | 75 | 좌씨춘추를 즐겨 외웠으나(배송지 주 ― 江表傳) 손권의 기습 가능성을 소홀히 해 형주를 잃었다(관우전). |
| 정치 | 62 | 손권의 혼담을 '호랑이 딸을 개의 자식에게 줄 수 없다'며 물리쳐 동맹을 흔들었다(관우전). |
| 매력 | 88 | 조조의 후대를 받고도 유비를 찾아 돌아갔다(관우전). 진수는 병졸에게 잘하나 사대부에게 교만하다고 평했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우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