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48년경(추정) — 생년 불명(148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20년 — 건안 25년(220) — 정군산 이듬해 졸(황충전 '明年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4년 | 가맹 | 토로장군(익주 평정 뒤) | 기록 |
| 219년 | 한중 | 정서장군 → 후장군·관내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6~207년 | 유표 | 중랑장·장사 유현 수비(유표 밑) | 불명 |
| 208년 | 위 | 비장군 대행(조조 형주 점령 뒤) | 불명 |
| 209~213년 | 촉한 | (유비에게 귀순, 입촉 수행) | 불명 |
| 214년 | 촉한 | 토로장군(익주 평정 뒤) | 기록 |
| 215~218년 | 촉한 | 토로장군 | 불명 |
| 219년 | 촉한 | 정서장군 → 후장군·관내후 | 기록 |
| 220년 | 촉한 | 후장군 | 불명 |
가맹에서 유장 토벌에 임해, 늘 선봉에서 진을 함락해 용맹이 삼군에서 으뜸이었다. 익주 평정 뒤 토로장군이 된다.
정사 황충전: 선주를 따라 입촉하여 가맹에서 임무를 받아 유장을 공격하는 동안 늘 선두로 진을 무너뜨렸고 용맹이 삼군에서 으뜸이었다. 익주가 평정되자 토로장군에 올랐다.
연의: 연의 62회
출전: 三國志 卷36 본 「忠常先登陷陣勇毅冠三軍益州既定拜為討虜將軍」
한중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베어 정서장군에 오른 뒤, 유비의 한중왕 즉위 때 후장군·관내후가 된다.
정사 황충전: 건안 24년 한중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쳤다. 하후연의 군이 정예였으나 황충이 앞장서 진격해 북소리가 하늘을 울리는 가운데 한 번 싸움으로 하후연을 죽여 대패시켰다. 제갈량이 황충을 후장군으로 쓰자 하자 선주가 관우 등과 같은 반열로 올리고 관내후를 내렸다.
연의: 연의 71회 — 연의 71회는 황충·엄안이 하후연을 벤 줄거리를 부풀린다(엄안은 정사에서 이 싸움에 없음).
관련: 정군산 전투와 한수 공방
출전: 三國志 卷36 본 「於漢中定軍山擊夏侯淵淵眾甚精忠推鋒必進勸率士卒金鼓振天歡聲動谷一戰斬淵淵軍大敗」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4 | 입촉 전쟁에서 항상 선봉에 서 진을 함락해 '용맹이 삼군에서 으뜸'이라 했다(황충전). |
| 무력 | 94 |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베었다(황충전). |
| 지력 | 50 | 지략 기록은 적다. 하후연 군이 정예였으나 '군사를 이끌며 북소리로 격려했다'고만 전한다(황충전). |
| 정치 | 50 | 정무 기록 없음. 한중왕 즉위 때 후장군 임명을 제갈량이 조율했다(황충전). |
| 매력 | 57 | 제갈량이 '황충의 명망은 관우·마초와 같지 않다'며 우려했다(황충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황충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