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0년경(추정) — 생년 불명(170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03년 — 황조 정벌 중 하구에서 유시에 맞아 사망(능통전). 연도는 아들 능통이 '15세'였다는 서술에서 건안 8년(203)경으로 추정.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3년 | 하구 | 파적교위 — 손권의 강하 토벌에 종군, 하구에서 전사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5~202년 | 오 | 손책을 따라 정벌 — 영평장(산월 평정) → 파적교위 | 불명 |
| 203년 | 오 | 파적교위 — 손권의 강하 토벌에 종군, 하구에서 전사 | 기록 |
손권의 강하 토벌에 종군해 하구에 들어가 선봉으로 앞부대를 깨고 홀로 가벼운 배로 진격하다 유시에 맞아 죽는다. 연도는 아들 능통이 열다섯이었다는 서술(능통은 이후 부병을 이었다)에서 203년경으로 추정.
정사 능통전: 능통의 아버지 능조는 가볍게 협기가 있고 담력이 있었다. 손책이 처음 일어날 때 늘 정벌을 따라 군의 선두에서 칼날을 밟았다. 영평장으로 산월을 평정하자 간활한 자들이 손을 거두었고 파적교위로 옮겼다. 손권이 군을 통솔하자 강하 토벌에 따라 하구에 들어가 선봉으로 앞부대를 깼으며 가벼운 배로 홀로 나아가다 유시에 맞아 죽었다. 능통은 열다섯 살이었고 손권은 능조가 나라 일로 죽은 것을 기려 능통을 별부사마·행파적도위로 삼아 아버지의 병력을 맡겼다.
연의: 연의 38회 — 연의 38회는 능조가 감녕의 화살에 죽는 것으로 쓰며 능통이 훗날 감녕과 원한을 갖는 설정의 발단이다(정사 능통전에는 죽인 이의 이름이 없다).
출전: 三國志 卷55 본 「及權統軍從討江夏入夏口先登破其前鋒輕舟獨進中流矢死」
정사 오주전: 208년 봄 손권이 황조를 다시 쳤다. 황조가 먼저 주병(舟兵)으로 맞섰으나 도위 여몽이 선봉을 깼고 능통·동습 등이 전력을 다해 공격해 성을 도륙했다. 황조는 몸만 빠져나가다 기병 풍칙에게 목이 베였고 남녀 수만 구를 포로로 했다. 동습전은 황조가 면구에서 몽충 두 척으로 양쪽을 막고 돌로 닻을 매어 천 명이 쇠뇌를 쏘았으나, 동습·능통이 결사 백 명으로 큰 배를 타고 몽충 속으로 뚫고 들어가 닻줄을 끊어 길을 열었다고 적는다. 연의 38회는 이 싸움을 건안 8년(203)으로 앞당겨 능조가 감녕의 화살에 죽는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38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61 | 손책 초기부터 정벌에 종군해 늘 군의 선두에서 칼날을 밟았다(능통전). |
| 무력 | 83 | 강하 토벌 때 하구에 들어가 선봉으로 앞부대를 깨고 홀로 가벼운 배로 진격했다(능통전). |
| 지력 | 평가 불가 | 지략 기록 없음. |
| 정치 | 50 | 영평장으로 산월을 평정해 간활한 자들이 손을 거두었다(능통전). |
| 매력 | 50 | '가볍게 협기로 용기가 있었다'(능통전). 손권이 나라 일로 죽은 것을 기려 아들 능통에게 부병을 잇게 했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능조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