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229년 — 「二世皇帝元年年二十一」(진시황본기)에서 환산한 추정(-209년 21세)
사망 -207년 — -207년 8월 이후 — 망이궁에서 염락에게 몰려 자살(「二世自殺」, 본기). 자영이 시신을 두현 의춘원에 서민의 예로 장사.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9년 | 함양 | 진 2세 황제 | 기록 |
| -208년 | 함양 | 진 2세 황제 | 기록 |
| -207년 | 함양 | 진 2세 황제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7년 | 진 | 진 2세 황제 | 기록 |
2세 황제 원년(21세). 조고를 낭중령으로 삼아 정사를 맡긴다.
정사 진시황본기: 2세 황제 원년 나이 21세. 조고가 낭중령이 되어 일을 맡아 보았다.
출전: 史記 卷006 「二世皇帝元年年二十一趙高為郎中令任用事」
봄, 조고와 모의해 군현을 동쪽으로 순행하여 갈석에서 회계까지 가며 시황이 세운 각석에 조서를 덧새긴다.
정사 진시황본기: 2세가 어려 아직 따르지 않으니 위세를 보이자는 조고의 말에 봄 동쪽 군현을 순행했다. 이사가 따랐고 갈석에서 바다를 따라 남쪽 회계에 이르러 시황의 각석에 모두 조서를 새겨 넣었다.
출전: 史記 卷006 「春二世東行郡縣李斯從到碣石并海南至會稽而盡刻始皇所立刻石」
조고의 건의로 대신과 공자들을 죄로 연좌해 죽인다. 4월 함양으로 돌아와 아방궁 공사를 다시 일으킨다.
정사 진시황본기: 대신들이 불복할 테니 군현 수위를 살피고 죄를 물으라는 조고의 말에 따라 대신과 공자들을 주살했고, 6공자가 두에서 죽임을 당했다. 4월 2세가 함양에 돌아와 아방궁을 다시 짓게 했다.
출전: 史記 卷006 「乃行誅大臣及諸公子以罪過連逮少近官三郎無得立者而六公子戮死於杜」 / 史記 卷006 「四月二世還至咸陽」 / 史記 卷006 「復作阿房宮」
7월, 진승이 형 땅에서 「장초」를 세워 반하자 동방에서 온 알자가 이를 알렸으나 화를 내 옥에 넣고, 뒤 사자가 「群盜」라 하자 기뻐한다.
정사 진시황본기: 7월 수졸 진승 등이 옛 형 땅에서 반해 장초라 했고 산동 군현이 호응했다. 알자가 반란을 보고하자 2세가 노해 하옥했고, 이후 사자가 「군도를 곧 잡을 것」이라 하자 기뻐했다.
출전: 史記 卷006 「七月戍卒陳勝等反故荊地為張楚」 / 史記 卷006 「群盜郡守尉方逐捕今盡得不足憂上悅」
2년 겨울, 진승의 장수 주장이 희까지 오자 놀라 장함의 건의대로 여산 죄수를 사면해 장함에게 군을 맡기고 주장을 격파한다. 이후 조고의 말대로 궁중에 머물며 공경과 만나지 않는다.
정사 진시황본기: 2년 겨울 주장의 수십만이 희에 이르자 2세가 놀라 소부 장함의 청대로 여산 도범을 사면하고 병기를 주어 무찔렀다. 이후 조고가 천자가 얼굴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하여 2세는 늘 금중에 있으며 조고와 일을 정했다.
출전: 史記 卷006 「二年冬陳涉所遣周章等將西至戲兵數十萬」 / 史記 卷006 「二世乃大赦天下使章邯將擊破周章軍而走」 / 史記 卷006 「於是二世常居禁中與高決諸事」
우승상 풍거질·좌승상 이사·장군 풍겁이 아방궁 중지를 간하자 노해 옥에 넣고, 거질·겁은 자살하며 이사는 오형을 받는다.
정사 진시황본기: 세 사람이 부역과 수자리를 줄이자고 간하자 2세는 한비자를 인용해 반박하고 세 사람을 하옥했다. 거질과 겁은 「將相不辱」이라 자살했고 이사는 옥에 갇혀 오형을 받았다.
출전: 史記 卷006 「下去疾斯劫吏案責他罪」 / 史記 卷006 「去疾劫曰將相不辱自殺」 / 史記 卷006 「斯卒囚就五刑」
8월 기해일, 조고가 사슴을 말이라 하여 바치자 대답을 시험하고, 사슴이라 한 자들은 법으로 해친다.
정사 진시황본기: 8월 기해일, 조고가 난을 꾸미려 먼저 시험하고자 사슴을 2세에게 바치며 말이라 했다. 2세가 웃고 좌우에 물으니 일부는 침묵, 일부는 말이라 아첨했고 사슴이라 한 자는 조고가 법으로 해쳤다.
출전: 史記 卷006 「八月己亥趙高欲為亂恐群臣不聽乃先設驗持鹿獻於二世曰馬也」
흰 호랑이가 왼쪽 참마를 문 꿈을 꾸고 점괘대로 망이궁에서 재계한다. 조고의 사위 염락이 병사를 이끌고 궁에 들어오자 왕이 되겠다, 만호후가 되겠다, 서민이 되겠다고 청하나 모두 거절당하고 자살한다.
정사 진시황본기: 점쾌대로 경수에 제사하려 망이궁에서 재계했다. 조고가 사위 염락, 아우 조성과 짜고 도적이 들었다 속여 병사 천여 명으로 궁에 들어갔고, 2세는 한 군의 왕, 만호후, 서민을 차례로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자살했다.
출전: 史記 卷006 「二世乃齋於望夷宮欲祠涇沈四白馬」 / 史記 卷006 「願得一郡為王弗許又曰願為萬戶侯弗許」 / 史記 卷006 「麾其兵進二世自殺」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주장 장함에게 여산 죄수를 풀어 군을 맡기라는 건의를 받아들였을 뿐 직접 군을 이끈 기록이 없다(본기 2년). |
| 무력 | 50 | 무용 기록 없음. 상림원에서 지나가던 행인을 활로 쏘아 죽였다(이사열전 부 조고). |
| 지력 | 50 | 조고와의 대화로만 정사를 결정했고 관동의 반란은 「群盜」라 보고받고 기뻐했다(본기). |
| 정치 | 50 | 공자·대신을 숙청하고 아방궁을 다시 지으며 가혹한 법으로 천하가 배반했다(본기 · 이사열전). |
| 매력 | 50 | 군신은 그를 따르지 않았고, 염락에게 군 하나의 왕·만호후·서민이라도 되게 해 달라고 빌었으나 거절당했다(본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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