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고(趙高)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진출생 생년 불명사망 -207년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원문에 없음. 「宦者」·「內官之廝役」로 진 궁에서 20여 년 일했다고 스스로 말함(이사열전)

사망 -207년 — -207년 — 자영이 재궁에서 찔러 죽이고 삼족을 함양에서 조리돌렸다(「子嬰遂刺殺高於齋宮三族高家以徇咸陽」, 진시황본기). 이사열전은 환관 한담에게 찌르게 했다고도 적는다.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함양낭중령→(-208)중승상기록
-208년함양낭중령→(-208)중승상기록
-207년함양승상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08년진낭중령→(-208)중승상기록
-207년진승상기록

나온 사건·전투

-209년 · 낭중령→(-208)중승상

2세가 즉위하자 낭중령이 되어 정사를 맡고, 엄한 법으로 대신과 공자를 숙청하라고 권한다.

정사 이사열전: 조고는 낭중령으로 늘 곁에서 일을 맡았다. 2세에게 엄법과 형벌로 죄 있는 자를 연좌해 멸족하고 선제의 옛 신하를 모두 제거하라 권했다. 이에 공자 12명이 함양 시장에서 죽고 공주 10명이 두에서 찢겨 죽었다.

출전: 史記 卷087 「以趙高為郎中令常侍中用事」 / 史記 卷087 「嚴法而刻刑令有罪者相坐誅至收族滅大臣而遠骨肉」 / 史記 卷087 「殺大臣蒙毅等公子十二人僇死咸陽市十公主矺死於杜」

-208년 · 낭중령→(-208)중승상

2세에게 조정에 나오지 말라 권해 모든 일을 자기가 결정하고, 이사가 직접 상소하자 2세를 설득해 오히려 이사를 하옥하고 고문한다.

정사 이사열전: 조고는 천자가 얼굴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며 2세를 금중에 머물게 해 일을 도맡았다. 이사가 조고의 단점을 상소하자 2세는 오히려 이사를 조고에게 맡겼고, 조고는 이사를 고문해 거짓 자백을 받아 냈다.

출전: 史記 卷087 「乃不坐朝廷見大臣居禁中趙高常侍中用事事皆決於趙高」 / 史記 卷087 「其以李斯屬郎中令」 / 史記 卷087 「趙高案治李斯」 / 史記 卷087 「榜掠千餘不勝痛自誣服」

-208년 · 낭중령→(-208)중승상

이사가 죽은 뒤 2세에게 중승상에 임명되어 모든 일을 결정한다. (본기는 이 임명과 이사 처형을 3년 겨울로 적는다)

정사 이사열전 부 조고: 이사가 죽은 뒤 2세는 조고를 중승상으로 삼았고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조고가 결정했다. 진시황본기는 같은 일을 3년 겨울 「趙高為丞相竟案李斯殺之」로 적어 이사열전(2년 7월 이사 처형)과 해가 다르다.

출전: 史記 卷087 「李斯已死二世拜趙高為中丞相事無大小輒決於高」 / 史記 卷006 「冬趙高為丞相竟案李斯殺之」

-207년 · 승상

8월 기해일, 사슴을 말이라 하며 바쳐 신하들의 복종을 시험하고 사슴이라 한 자는 법으로 해친다.

정사 진시황본기: 8월 기해일, 조고가 난을 꾸미기 전 군신이 따를지 시험하려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 했다. 말이라 따른 자도, 침묵한 자도 있었고 사슴이라 한 자는 조고가 법으로 해쳐 군신이 모두 두려워했다.

출전: 史記 卷006 「八月己亥趙高欲為亂恐群臣不聽乃先設驗持鹿獻於二世曰馬也」 / 史記 卷006 「後群臣皆畏高」

-207년 · 승상

유방이 무관을 넘자 2세의 노여움이 두려워 병을 칭하고 조회를 피하다가, 사위 염락·아우 조성과 모의해 망이궁에서 2세를 자살시키고 공자 영을 진왕으로 세운다.

정사 진시황본기: 패공이 무관을 깨자 사사로이 조고에게 사람을 보냈고, 조고는 2세에게 죽임당할까 두려워 사위 함양령 염락·동생 조성과 모의했다. 염락이 병사 천여 명으로 망이궁에 들어가 2세를 자살로 몰았고, 조고는 2세의 형 아들 공자 영을 진왕으로 세웠다.

출전: 史記 卷006 「高懼乃陰與其婿咸陽令閻樂其弟趙成謀」 / 史記 卷006 「樂遂斬衛令直將吏入」 / 史記 卷006 「立二世之兄子公子嬰為秦王」

-207년 · 승상

자영이 재궁에서 병을 칭하고 기다렸다가 조고를 찔러 죽이고 조고의 삼족을 함양에서 조리돌린다.

정사 진시황본기: 자영은 아들 둘과 조고가 자신을 묘에서 죽이려 한다고 보고 병을 칭하고 기다렸다. 조고가 직접 찾아오자 자영이 재궁에서 찔러 죽이고 삼족을 함양에서 조리돌렸다.

출전: 史記 卷006 「子嬰遂刺殺高於齋宮三族高家以徇咸陽」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7년 · 무관 입관

정사 고조본기·통감: 패공은 장량의 계책으로 역이기·육가를 보내 진 장수를 이익으로 달래는 한편 무관을 기습해 깨고, 요관 앞 산 위에 깃발을 늘어놓는 의병을 세운 뒤 남전 남쪽과 북쪽에서 진군을 크게 깨뜨렸다. 한 원년 10월 패공의 군이 제후보다 먼저 패상에 이르렀고 진왕 자영이 목에 끈을 걸고 흰 수레, 흰 말로 지도 곁에서 항복했다. 통감은 8월 패공이 수만 명을 이끌고 무관을 쳐 도륙했다고 적는다. 진 쪽 병력 수는 원문에 없다.

-206년 · 함양 입성과 진 멸망

정사 진시황본기·고조본기: 조고가 이세를 죽이고 자영을 진왕으로 세웠으나 자영은 재궁에서 조고를 찔러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한 원년(월 표기상 10월) 유방은 장량의 계책에 따라 역이기·육가를 보내 진 장수를 이익으로 꾀하고 무관을 습격해 깬 뒤 남전 남쪽에서 의병(疑兵)의 깃발을 늘리고 약탈을 금해 진군을 흔들어 크게 깼다. 유방은 제후보다 먼저 패상에 이르렀고 자영이 흰 말이 끄는 소거에 목에 끈을 걸고 옥새와 부절을 봉해 지도 곁에서 항복했다. 장수들이 자영을 죽이자 했으나 유방은 "항복한 사람을 죽이면 상서롭지 못하다"며 관리에게 맡기고 함양에 들어가 궁궐을 머물려다 번쾌·장량의 간언으로 보물과 창고를 봉하고 패상으로 돌아와 법삼장을 선포했다. 한 달 남짓 뒤 제후군이 이르러 항적이 자영과 진 종실을 죽이고 함양을 도륙하고 궁실을 불태웠다. 원문에 병력은 「數萬人」으로만 있어 수는 null로 둔다. 서기 환산은 자치통감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병사를 직접 지휘한 기록은 없고 사위 염락에게 병력을 맡겨 궁에 들였다(본기).
무력50무용 기록 없음. 환관 출신으로 법률과 형옥에 밝았다(본기: 胡亥에게 獄律令法事를 가르침).
지력83사슴을 말이라 하여 신하를 가려냈고, 호해와 이사를 차례로 설득해 거짓 조서를 만들었다(본기 · 이사열전).
정치702세의 숙청과 승상 임명 이후 사실상 모든 일을 결정했으나(이사열전 부) 결국 반란 속에 진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매력25신하 다수가 두려워했고 자영도 그를 죽이려 모의했다(본기).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고의 이동 경로

진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