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연도 기록 없음
사망 -203년 — 한 4년(-203) — 성고 전투에서 사수 가에서 자결, 머리가 역양 저자에 매달림. 전문 「大司馬咎長史欣皆自剄汜水上」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7년 | 함양 | 진 장사→항우 휘하 상장군 | 기록 |
| -206년 | 역양 | 새왕 | 기록 |
| -203년 | 사수(정도) | 초 장사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년 | 진 | 진 장사(장함 휘하) | 기록 |
| -208년 | 진 | 진 장사(장함 휘하) | 불명 |
| -207년 | 진 | 진 장사→항우 휘하 상장군 | 기록 |
| -206년 | 초 | 새왕 | 기록 |
| -205년 | 한 | 새왕(항한→이탈) | 기록 |
| -204년 | 초 | 초 장사 | 불명 |
| -203년 | 초 | 초 장사 | 기록 |
2세가 장함을 돕도록 장사 사마흔과 동예를 보내고, 장함 군은 진승·항량·위구를 차례로 깬다.
정사 진시황본기: 2세가 장사 사마흔과 동예를 더 보내 장함을 돕게 했다. 진승을 성보에서 죽이고 항량을 정도에서 깨고 위구를 임제에서 멸한 일이 이 문장에 묶여 있다.
출전: 史記 卷006 「二世益遣長史司馬欣董翳佐章邯擊盜殺陳勝城父破項梁定陶滅魏咎臨濟」
장함의 명으로 함양에 가 사정을 아뢰려 했으나 조고가 만나 주지 않자 두려워 달아나 돌아와 장함에게 조고의 실권을 알리고 항복을 권한다.
정사 항우본기: 장함이 두려워 장사 흔을 함양에 보냈으나 조고가 3일간 만나 주지 않았다. 흔은 조고가 사람을 보내 쫓을까 두려워 샛길로 돌아가 "조고가 안에서 일을 쥐고 있어 아랫사람이 할 일이 없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출전: 史記 卷007 「章邯恐使長史欣請事」 / 史記 卷007 「趙高用事於中下無可為者」
장함이 항우에게 항복하자 상장군으로 진군 선봉을 맡고, 신안에서 진 병사들을 죽일 때도 항우와 함께 입관한다.
정사 항우본기: 항우가 장함을 옹왕으로 세우고 장사 흔을 상장군으로 삼아 진군을 이끌고 앞서 가게 했다. 신안에서 진의 아전과 병사 20여 만을 묻어 죽인 뒤 항우는 장함·장사 흔·도위 예만 데리고 진에 들어갔다.
출전: 史記 卷007 「使長史欣為上將軍將秦軍為前行」 / 史記 卷007 「而獨與章邯長史欣都尉翳入秦」
항우가 항량에게 은혜를 입은 옛 역양 옥리라 하여 새왕에 봉해 함양 동쪽에서 황하까지를 다스리고 역양에 도읍하게 한다.
정사 항우본기: 장사 흔은 옛 역양 옥연으로 항량에게 덕을 베푼 일이 있었다. 항량이 역양에서 체포된 적이 있을 때 기현 옥연 조구의 편지를 역양 옥연 사마흔에게 보내 사건이 없던 일이 되게 했다. 항우는 흔을 새왕으로 세워 함양 이동에서 황하까지를 다스리고 역양에 도읍하게 했다.
출전: 史記 卷007 「長史欣者故為櫟陽獄掾嘗有德於項梁」 / 史記 卷007 「故立司馬欣為塞王王咸陽以東至河都櫟陽」 / 史記 卷007 「項梁嘗有櫟陽逮乃請蘄獄掾曹咎書抵櫟陽獄掾司馬欣以故事得已」
한왕이 동쪽으로 땅을 공략하자 하남왕 신양 등과 함께 항복하나, 팽성 패전 뒤 한을 떠나 초에 항복한다.
정사 고조본기: 한 2년 한왕이 동쪽으로 땅을 공략하자 새왕 흔·적왕 예·하남왕 신양이 모두 항복했다. 한이 팽성에서 패하자 새왕 흔은 도망쳐 초로 들어갔다.
출전: 史記 卷008 「二年漢王東略地塞王欣翟王翳河南王申陽皆降」 / 史記 卷008 「塞王欣亡入楚」
성고를 지키던 대사마 조구와 함께 한군의 도발에 사수를 건너다 대패하고 자결한다. 한왕이 그 머리를 역양 저자에 매단다.
정사 항우본기: 항왕이 동쪽으로 간 뒤 대사마 조구가 한의 도발을 5, 6일 참다가 사수를 건넜고, 한군이 반쯤 건넌 병사를 쳐 크게 깼다. 대사마 구와 장사 흔은 사수 가에서 스스로 목을 찔렀다. 후에 한왕이 역양에서 옛 새왕 흔의 머리를 저자에 매달았다.
관련: 사수 전투
출전: 史記 卷008 「大司馬咎長史欣皆自剄汜水上」 / 史記 卷008 「梟故塞王欣頭櫟陽市」
정사 항우본기: 장함이 정도에서 항량을 깬 뒤 황하를 건너 조를 치자 조왕 헐·진여·장이는 거록성으로 들어갔다. 장함은 왕리·섭간에게 거록을 에워싸게 하고 자신은 그 남쪽에서 용도로 곡식을 대었다. 초 회왕이 송의를 상장군으로 삼아 조를 구하게 했으나 안양에서 46일을 머물렀고, 항우가 송의의 목을 베고 상장군이 되었다. 항우는 당양군·포 장군에게 병력 2만을 주어 먼저 강을 건너게 했으나 전세가 약해 진여가 병력을 청하자 전군을 이끌어 강을 건너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깨며 3일 양식만 지니는 결사의 태세로 왕리를 에워싸 아홉 번 싸워 용도를 끊고 크게 깨 소각을 베고 왕리를 사로잡았다. 섭간은 항복하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 구원하러 온 제후군 10여 보루는 벽 위에서 구경만 했다. 이후 장함은 극원에서 항우와 대치하다 항복했다.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1 | 장함 군의 장사로서 진군 선봉을 맡았다(항우본기).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은 없다. |
| 지력 | 62 | 조고의 실권을 알아 장함에게 항복을 권한 판단을 했다(항우본기). |
| 정치 | 평가 불가 | 새왕으로 봉해졌으나 통치 기록은 없다. |
| 매력 | 50 | 항량과 인연이 있어 항우의 신임을 받았다(항우본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사마흔의 이동 경로